양산보의 후대에 만들어진 고암정사, 부훤당 일대의 내정으로 구성된다. 전원과는 두 개의 다리에 의해 연결되고 하부는 계원에 인접해있다. 『소쇄원도』에 의하면 매화와 난초가 주변에 심어져 있고 거목이 있으며 제월당 앞뜰 왼편 모퉁이에 이국적 정취의 파초가 심어져 있다. 앞뜰은 거의 빈 땅이
양산보의 주도로 이루어졌으며, 그 정확한 조영시기는 1520년대 후반과 1530년대 중반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후 정유재란으로 건물이 불에 타기도 했지만 다시 복원 중수하고 현재까지 15대에 걸쳐 후손들이 잘 가꾸어 나가고 있는 조선 최고의 민간정원이라 할 수 있다.
2-2 소쇄공 양산보
소쇄원을 만든
1. 들어가며..
국가 사적 304호인 소쇄원은 조선 최고의 민간 정원으로서 최근까지도 한국 정원에 있어서 최고라는 칭송을 받는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자연과의 조화를 추구한 이곳에서 소쇄원을 조성한 양산보를 비롯하여 송순, 김인후, 정철, 송시열등 당대의 문인들은 소쇄원의 아름다움을 아꼈
양산보(1503~1557)가 조성한 것으로 스승인 조광조가 유배를 당하여 죽게 되자 출세에 뜻을 버리고 이곳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았다. 소쇄원이라 한 것은 양산보의 호인 소쇄옹에서 비롯되었으며, 맑고 깨끗하다는 뜻이 담겨있다.
오곡문 담장 밑으로 흐르는 맑은 계곡 물은 폭포가 되어 연못에 떨어지고,
양산보 등 조선 시대 충신들의 유품, 가사문학 관련작품 6천여 점이 전시되어 있다. 이러한 작품을 담양에 전시한 것은 귀양살이와 냑향한 선비들이 이곳에서 후진양성을 하면서 만든 가사작품을 남긴것과 연관된다고 볼 수 있다. 가사문학의 기원은 신라가요라 하는가 하면 고려말에서 조선후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