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은 손해배상액이 너무 적기도 하였고, 한겨레와 동아일보를 제외한 다른 언론들은 승소사실을 보도하지 않아 명예회복이 되지 않았다고 판단해서 노무현은 조선일보에 대한 소송을 취하했다.
약 10년뒤 2001년 1월 11일 김대중 대통령이 연두 기자회견에서 언론개혁을 언급한 후 국세청은 중앙
노무현 정부로 이어지는 10년 동안 권력이 뒤바뀐 현실속에서 철저한 야당지적인 성격을 띄었다. 정부의 개혁이나 정책집행에 있어서 건전한 비판보다는 맹목적인 시비와 부정적인 여론몰리, 사회통합을 저해하는 언론보도 등으로 본격적인 야당지로서의 면모를 보여 왔다.
그리고, 동아일보는 일제
노무현 정권이 언론에 대한 정면돌파를 반드시 달성하였으면 한다. 왜곡된 보도, 편파적인 보도, 악의적인 보도, 돈으로 기사를 사고 파는 행위 등등의 잘못된 언론관행을 일삼으면서도 책임이나 의무는 없는 거대한언론권력을 타파하겠다는 그 의지에는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이다. 그것은 언론사를
기사를 본 것이다(宋敏 1988). 그가 신문을 직접 본 것인지 누구에게 이야기를 들은 것인지는 확인할 수 없으나, 여기에 나타나는 '미국 대통령'은 가필드(James A. Garfield)를 지칭한다. 그가 총격을 당한 것은 1881년 7월 2일이었으나, 이 소식이 일본의 신문지상에 보도된 것은 7월 5일이었던 모양이다. 이
정치적 각성과 보도에 대한 비판적이고 적극적인 수용자세도 필요하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런 근본적인 원인의 제거 또는 구조적인 문제의 개선은 쉽지 않다. 그것은 사회와 언론의 체제․제도․관행에, 권력자들과 언론인들의 인식에, 그리고 수용자들의 수용행태에 대전환이 있어야 되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