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가 명명한 '화성'이라는 본래의 이름을 되찾았다. 아마 수원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도 화성에 대해 잘 모르고 있을 것이다.
정조는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한 아버지 장헌세자의 묘역을 천하명당 자리인 현륭원 자리로 옮기고 고려시대부터 터를 잡아왔던 부읍치를 옮겨 새로운 신도시를 건설하려
정조가 신도시 화성을 건설하고 여기에 새로운 성곽을 쌓은 진정한 동기였다고 볼 수 있다.
[수원화성의 의미]
● 역사적의의.
화성 축성에는 국왕 이하 관료, 지식인, 예술가, 기술자, 일반 민인 등 모든 계층이 참여했고, 또 이 시설물은 중흥의 정점에 달했던 정조시대의 문화적, 과학적 역량
Ⅰ.정조(正祖)
화령전 內 정조 어진
1.생애
1752(영조 28)∼1800(정조24) 조선 제22대왕으로 재위기간은 1776∼1800년이며 이름은 산(祘). 자는 형운(亨運), 호는 홍재(弘齋)다.
1752년(영조 28) 영조의 둘째아들인 장헌세자 장헌세자(莊獻世子) : 영조는 자신의 행위를 뉘우치고 그에게 사도(思悼)의 시호
수원부를 둘러 싼 성벽은 팔달산 정상에서 산의 능선을 따라 남으로 이어 내려와서 남쪽 평탄한 곳에 내를 지나 동쪽으로 낮은 언덕을 따라 거의 직선을 그리다가 동쪽 끝 높은 지점에서 지세를 쫓아 서쪽으로 굴곡을 그리다가 북쪽 내를 건너 평탄한 들을 지나 다시 팔달산 정산으로 이어진다. 산성과
시대에 수원화성을 계획하면서 그림과 글로 설계도와 내용을 철저하게 남겨놓은 《화성성역의궤》 덕분에 원형에 가깝게 복원할 수 있었다는 점을 인정받아 이례적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었다. 이 장에서는 세계의도시와건축4공통) 수원화성이 건설된 배경과 그 특징에 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