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하를 여행하여 다녀온 후 열하일기라는 한국 문학사에 길이 남을 전무후무한 명작 기행문을 쓰게 된다. 그 후 50세에 선공감 감역 등 말직에 머물다가 의금부도사, 한성부 판관, 안의현감, 면천군수등의 여러 관직을 거쳤다. 마지막으로 양양부사를 끝으로 관직에서 물러나게 되고 1805년 69세의 일기로
중요한 기준으로 삼을 경우, 진정한 고전을 놓치기 쉽다. 예컨대, 『열하일기』가 그러할 것이다. 해학과 유머로 범벅된 『열하일기』의 가장 큰 특장점이 기존의 ‘고전’으로서의 기준에서는 용인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다 바람직한 고전관으로 옛 작품을 바라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열하일기란?
조선 정조 때의 실학자
연암 박지원의 대표작
26권 10책, 필사본
청나라 건륭제의 칠순연을 축하하기 위해
1780년 열하를 다녀온 것을 기록한 연행일기
1783년 완성
왜 열하일기인가?
1780년, 동지사 박명원 일행과
함께 청나라로 향한 박지원
청에서 기록한 26편의 일기가
<열하일
1.序
『열하일기』의 저자 박지원이 살았던 시대는 병자호란과 정유재란을 거쳐 만주족이 권세를 틀어쥐고 있던 청나라에 굴복하게 된 때이다. 그렇기 때문에 속내로는 여전히 자주국가임을 인지하면서도 형식상으로는 황명과 다름없는 사대의 예를 청나라를 향해 취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