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저술은 자택에서 개인 강의를 받은 수강생들의 필기가 정리되어 그가 작고한 10년 후에 간행되었다. 그의 私講義는 수강료가 비쌌으나 수강을 허가 받은 학생은 명예로웠다고 한다. 그는 베네치아의 문서관에서 고사본을 연구하다가 열병으로 37세에 요절하였다. 그의 유일한 유저 <라틴어학강의>
교육(학벌, 학력)을 통해 신분 상승하려는 욕구, 일류대학의 졸업장이 중요한 사회적 자본이 되는 학벌지상주의가 그것이다. 해방이후 지금까지의 대학입학시험제도는 표에서 살펴 볼 수 있다.
지금까지 대학입학시험은 10여 차례 변화해왔다. 1969학년도부터 1980학년도까지 실시된 대학입학예비고사
국어교육계의 중심부에 있는 사람들을 통해 도입되고, 그 때문에 그 이론이 교육 현장에 영향력을 갖게 된 뒤부터 독서지도 전문가란 개념이 상정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것이 일반 사람들에게 호응을 얻기 시작한 것은 우리교육을 주도하는 대학입시 제도에서 논술고사의 비중이 큰 몫을 차지한 데
그렇다면 우리는 '수학은 고차방정식을 배우고, 국어는 현대문학을 배웁니다'라고 답해야 합니까?" (고1)
"요즘은 전산프로그램이 너무 발달되어 있어서, 중간고사 끝나면 바로 그 다음날 시험성적이 발표됩니다. 시험에 대한 해방을 느끼기도 전에 우리는 다시 기말고사를 준비해야 하는 거죠." (고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