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메이지유신을 모델로 국가의 개혁을 꿈꾸었음을 예상할 수 있고, “폐부의 신하”라는 표현의 온건개화파는 청에 의존하는 사대주의 성격을 볼 수 있다.
김홍집·김윤식·어윤중 등 온건개화파는 임오군변 때부터 개화에 대한 인식, 청국·일본에 대한 관점, 개혁을 둘러싼 방법론 등의 의견
거쳐 발전하는 것으로 파악, 아직 문명에 이르지 못한 나라는 문명을 발전시키기 위해 당시 최고에 달한 유럽 문명을 목표로 해야 한다는 주장을 전개해 나갔다. 이러한 입장에서 그는 일본을 제외한 동양문명을 아직 야만이나 반개의 단계로 바라보았는데, 이러한 입장은 특히 아래에서 잘 드러난다.
일본에 알려진 서양어는 쇄국시대 일본과 교류한 네덜란드어가 유일했고 배울 수 있는 곳은 나가사키뿐이었다. 나가쓰번의 중역들은 우선 유럽서적을 읽을 수 있는 인력을 양성하기로 하고 난학을 배울 생각이 있는 지원자를 찾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일본은 철저한 봉건제로 번민(藩民)들의 출입
일본에 알려진 서양어는 쇄국시대 일본과 교류한 네덜란드어가 유일했고 배울 수 있는 곳은 나가사키뿐이었다. 나가쓰번의 중역들은 우선 유럽서적을 읽을 수 있는 인력을 양성하기로 하고 난학을 배울 생각이 있는 지원자를 찾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일본은 철저한 봉건제로 번민(藩民)들의 출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