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 론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 남명 조식선생은 조선 전기 유학의 거두로 인식되지만, 치열한 당파 싸움과 정적들의 견제속에 정치에 있어서는 자신의 뜻을 널리 펴지 못하고 낙향하여 후진양성을 도모하는데 일생을 바친 공통점을 갖고 있다. 당시 사회는 사림파에 대한 훈구파의 억압이 한창이던
장원급제하여 사람들에게 구도장원공(九度壯元公)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대과에 급제한 1564년에 정6품인 호조(戶曹) 좌랑(佐郞)으로 관직에 나선 뒤에 예조(禮曹)와 이조(吏曹)의 좌랑을 거쳐 사간원(司諫院) 정언(正言)과 사헌부(司憲府) 지평(持平) 등의 대간(臺諫)의 직위에 있었다. 1568년(선조 1)에는
율곡(栗谷) 이이(李珥)는 1536년(중종 31년) 12월 26일에 강원도 강릉 북평촌 오죽헌(烏竹軒)에 있는 외가에서 태어났다. 그는 덕수 이씨로 부친 이원수 공과 모친 사임당 신씨의 4형제 중 3남으로 태어났다. 신사임당이 아이를 낳기 전에 꿈속에서 용을 보았다고 해서 그의 자를 현룡(見龍)이라 했고 그의 고
율곡(栗谷) 이이(李珥)는 1536년(중종 31년) 12월 26일에 강원도 강릉 북평촌 오죽헌(烏竹軒)에 있는 외가에서 태어났다. 그는 덕수 이씨로 부친 이원수 공과 모친 사임당 신씨의 4형제 중 3남으로 태어났다. 신사임당이 아이를 낳기 전에 꿈속에서 용을 보았다고 해서 그의 자를 현룡(見龍)이라 했고 그의 고
율곡(栗谷) 이이(李珥)는 1536년(중종 31년) 12월 26일에 강원도 강릉 북평촌 오죽헌(烏竹軒)에 있는 외가에서 태어났다. 그는 덕수 이씨로 부친 이원수 공과 모친 사임당 신씨의 4형제 중 3남으로 태어났다. 신사임당이 아이를 낳기 전에 꿈속에서 용을 보았다고 해서 그의 자를 현룡(見龍)이라 했고 그의 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