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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이 이 시대에는 불교음악이 본격적으로 전래되었다.
그리고 전제 왕권의 성립에 따른 관계의 하나로 설립됐던 왕립 음악기관인 음성서의 성장·발전이 통일 신라 시대의 향악 발전에 중추적인 구실을 했다.
+ 통일 신라 음악에 관한 자료: <삼국사기>악지, <고려사>악지, <일본서기>,<일본후기>
음성서> 이다.
신라는 삼국통일 이후 불교의 영향을 받아 <범패> 일명 <어산>이라는 불교 음악이 수입되었고 최치원의 <향악잡영> 에 기재 된 것과 같은 서역계의 무악(舞樂)들이 성행했다. 고려시대에는 삼국시대의 음악을 이어받아 더욱 활발한 발달을 했다. 연등회, 팔관회 때마다 성대한 음악이 연주
음성서’가 진흥왕대에 설치되어 예인(藝人)을 길러낸 흔적이 있다. 기생의 역사를 가장 잘 정리하여 놓은 것의 하나인 일제 시대 국학자인 이능화가 쓴 조선해어화사(朝鮮解語花史)에는 신라의 원화설과 무녀, 전쟁포로 기원설 등 이에 대해 자세히 기술해 놓았다.
조선 후기에는 초기 기생제도의
삼국시대에 이미 형성되었던 것으로, 고구려에 유녀(遊女)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고, 신하는 음악교육기관인 `음성서`가 진흥왕대에 설치되어 예인(藝人)을 길러낸 흔적이 있다. 문헌상에서 기녀의 존재는 이인로(李仁老)의 『파한집』(破閑集)에 실린 김유신(金庾信)의 일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