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에 참여한다. 이제 전쟁은 중공군과 북한군, 그리고 유엔군과 국군의 대결이 되었다. 다시 북한군과 중공군에 의해 밀려 내려가게 된 유엔군과 국군은 다음 해인 1951년 1월 4일 서울을 내주고 후퇴한다.
6) 긴 휴전 협상과 휴전
1951년 5월 이후 전투는 지금의 휴전선 부근에서 한 번은 국군과 유엔
현재까지 분쟁이 일어나고 있는 원인이라 하겠다. 그 분쟁들로는 ‘걸프 전쟁, 이라크전쟁, 이라크 내분, 이란-이라크전쟁, 이란-UAE 영유권 분쟁, 팔레스타인 분쟁, 이스라엘-요르단 분쟁, 이스라엘-시리아 분쟁, 터키 내 쿠르드족 분리 운동’등이 있다.
그 중 ‘팔레스타인-이스라엘간의 분쟁’과
울포위츠가 체류하는 호텔을 겨냥한 로켓폭탄 공격은 미국정부, 특히 네오콘에게는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이란의 핵포기 선언의 의도와 내용도 차츰 그렇게 단순명쾌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군사적으로 미국은 현재이라크에서 난관에 처해 있다. 미국으로서는 현재 미군과 더불어
전쟁과의 유사성을 주목하고 있다.
제 2차 이라크전쟁은 부시 미 대통령이 개전 43일 만에 사실상 종전 선언을 함으로써 막을 내리게 되었다. 그러나 종전선언 이후 4년 반이 지난 현재까지도 이 지역에서 사상자 수는 오히려 증가하고 있으며, 올해의 경우 현재(11월 9일)까지 이라크 주둔 미군의 사
현재까지도 미국의 이라크 공격의 명분에 대한 논란도 정리되지 않고 있다. 선제공격의 정당성, 이라크 내의 대량살상무기의 존재여부, 이라크전쟁을 시작한 미국의 진정한 의도 등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계속 중이다. 이 논문은 9.11테러 이후, 제대로 정리되지도 못한 명분 하에 시작된 미국의 이라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