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언에 대한 지지라든지, 팔레스타인 분할안에 대한 찬성, 그리고 2차대전 이후에는 친이스라엘정책 등으로 중동아랍국들, 특히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에게는 불신의 대상이었다. 이러던 것이 1970년 말에 이집트와 이스라엘의 평화협정을 이끌음으로써 이 지역에서의 미국의 영향력을 행사했다.
전쟁, 1967년 6일 전쟁, 1973년 제 4차 중동전쟁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렇게 치열한 전쟁을 하면서도 양측 진영은 평화를 위한 노력을 시도하기도 했다. 1978년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과 이스라엘 수상이 만난 사건이나 1991년의 ‘마드리드 회담’, 그리고 1993년 이스라엘의 라빈 총리와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중동지역에서 대칭적인 균형을 변경 시킬 수 있는 주도권을 확보하지는 못했다.
미국은 중동지역에 대한 집단방위체제 구상을 아이젠하워 행정부 출범 이전부터 논의하고 있었다.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이러한 상황은 1950년 한국전쟁 이후 이 지역에 대한 세력을 잃을 것을 우려하여 더욱 더 빠르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가 수립되어 독자적인 정부를 꾸리고 있다.
은 오랜 역사적 변동을 거듭했기 때문에 그 경계가 불명확하다. 팔레스타인은 약 10만년 전부터 사람이 살았고, 기원전 12세기경 펠리시테인의 지배를 받으면서 팔레스티나라고 불리게 되었다. 제 1차 세계 대전 이후 영국의 통치지역이
이라크 등 일부국가가 핵무기를 개발하여 이를 방해했기 때문이라는 미국의 유도설이 있다. 이희수. 이원삼 외 “이슬람” .청아출판사 ,2001,p 207, 208, 212
이스라엘 문제에서부터 걸프전에 이르기까지의 미국은 서방세력의 우두머리로 중동지역의 패권을 휘둘렀으며 이러한 이유들이 테러단체에게 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