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자유주의의 도전을 받아왔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청교도적인 와하비(Wahhabi) 원리주의가 일어났다. 이러한 갈등적 경쟁관계에 있는 이데올로기 틀 속에서 아랍 세계는 4차에 걸쳐 아랍-이스라엘 전쟁을 겪었고, 특히 1967년의 제 3차 전쟁에서 패배하고 1970년 과격한 이슬람원리주의자들에 의해
이슬람원리주의자들이 자신을 처음 지칭하는데 사용한 것이 아니다. 서구의 입장에서 그들을 구분하기 위해 붙여준 이름인 것이다. 무슬림들은 자신들의 이러한 성향을 원리주의나 우슬리야보다는 이슬람부흥운동 이라고 부르는 것을 선호한다.
1.2. 태동과 발전
1.2.1. 태동
현대 이슬람원리주의
원리주의자라는 명칭을 적용하게 된 것이다.
1940년대에 들어와서 전통적인 데다 과격한 회교도를 이슬람원리주의자(Islamic Fundamentalist)라 부르기 시작했다. 따라서 이 용어는 소위 이슬람원리주의자들 자신이 스스로 이름 붙인 것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非이슬람세계 특히 영어권에서 이들에게 붙여
이슬람의 전체성을 주장했고 이러한 전체성은 순수이슬람의 회복을 그 전제로 했다.
무함마드와 4대 정통칼리프기의 무슬림 공동체를 이상적인 국가모델로 본받아 정치, 사회, 경제, 법질서를 재구성하려던 알 반나의 사상은 본질적으로 영국 제국주의와 그 협력정권들과 같은 기존체제에 대해 반동
중심으로 하여 바아스당, 군부, 알라위파, 순니파 정치엘리트가 권력을 나누어가진 권위주의 정권이다. 따라서 아사드 가문이 순조롭게 정권을 세습하기 위해서는 정권 내부의 세력집단 혹은 개인들이 새로운 지도자에게 충성하도록 설득하고, 이에 실패할 경우 정치적으로 제거하는 과정이 필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