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참배반대로 감옥에 갈 때 “눅 9:62, 마10:37∼39를 마음에 깊이”새기라고 했다한다. http://www.aeyangwon.org/pastor/martyr.htm (손양원목사의 순교사상).
교회당을 짓는다고 할 때 가진 재산 전부를 드렸는데 그 가진 재산이 논 5마지기이다. 부부가 상의하여 3마지기를 내 놓았는데 후에 부인이 2마지기를 마
한국의 어느 지역을 막론하고 어두워지기 시작하면 새벽이 우리의 곁에 다가올 때까지 빨간 십자가를 쉽게 관찰할 수 있기 때문에 서양 사람들은 서울을 ‘교회당들의 도시(A city of churches)'라고 부르기도 한다. 한국기독교는 미국 다음으로 많은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으며,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가 우
기독교는 그만큼 많은 사실의 가능성과 밝혀지지 않은 이야기들이 숨겨져 있을 것이라 생각하였기 때문에 이번 발표주제를 통해 일제 식민지 시대의 기독교의 행보에 대해 알아보려 한다. 특히 기독교라는 종교와 관련된 수많은 사건들 중 어떠한 사실들을 근거로 사람들은 그들을 항일이라 하는지,
기독교계는 분열되었으며, 1937년부터 기독교계 학교의 일부는 폐교되고 일부는 ‘순응’하게 되었다. 1937년 중일전쟁 이후 일제의 이른바 ‘황민화(皇民化)운동’의 고조와 함께 교육계에서의 신사참배 문제가 그들의 의도대로 일단락되어가자, 이제 그 강요의 마수를 일반인들은 물론 교회에까지 뻗
한국전쟁기…정신적·물질적 안정 제공
한국전쟁과 함께 월남한 북한의 교인들은 가는 곳곳마다 교회를 세웠다. 교회는 고향을 상실한 사람들이 함께 모일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고, 자신들의 고통과 아픔을 토로하고 치유받을 수 있는 공간이자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일종의 고향이었다. 한국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