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아시아연대론의 주된 공격 대상으로 러시아를 지목하게 만들었다.
일본은 조선과 수호조약을 체결한 후 기회 있을 때마다 러시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 주었고, 또 조선의 군비에 대해서도 잦은 충고를 하였다. 수신사 김기수의 기록을 보면 일본의 이노우에 가오루는 두 번에 걸쳐 제정러
조선 정책을 전개했다. 이 때문에 일본의 대 조선정책은 약탈적, 폭력적으로 전개된다.
1875년 윤요호사건과 이에 따른 강화도조약으로 대조선정책을 시작했다. 그러나 조선에 대한 종주국임을 자임하는 청나라 때문에 1894년 청일전쟁 발생(일본승리)
청일전쟁 승리 후 러시아의 간섭으로 인해 조선
조선을 둘러싼 제국주의 열강들의 정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각 국가들의 동북아에서의 정책적 목표를 알아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19세기 중엽 이후 동북아시아에서 전개된 열강 대립의 주축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영국과 러시아의 적대였다. 영ㆍ러의 대립은 동아시아 지역에서만 있었
조선을 복속시키면 황국보존의 기초가 되어 앞으로 '만국경영'의 기본이 된다"라고 떠들었다. 여기에 외무경 사와 노부요시도 적극 동조하여, 러시아가 조선을 침략하려는 이때 일본이 먼저 조선을 점령하자고 맞섰다. 이어서 그는 조선에 사절을 파견할 것을 제의하여, 1870년 10월에 사절을 조선에 파
대한조약개정 외교에서는 무조건적 최혜국 대우의 부정 및 조약 폐기론의 부분적인 단행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동아시아 외교는 청에 대신한 패권 지향으로 나타났는데, 그 내용은 청일관계의 차별화, 조일 불평등 관계의 고착화, 그리고 조선 독립의 부정을 발판으로 한 일본단독의 조선 보호권의 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