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만 일제의 지배정책에 침묵으로 저항하고 있었다. 이러한 방식의 내선일체론은 일본측의 내선일체론과 거기에 추종했던 일부의 조선인 내선일체론자들을 중심으로 한 내선일체론이 지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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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일제(일제강점기, 식민지시대)의 침략과정
1870년대 들어 세계
일본제국주의에 이용되었고 농민과의 연결이 없었던 점을 들어, 그 실패가 필연적이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갑신정변 부분의 집필자 유문화는 근로대중만이 진정한 변혁주체라 보고 김옥균 등의 활동을 과거 당쟁의 연장선상에서 부정적으로 파악하고 있다. 당시는 식민지에서 해방된 지 얼마 안 된 시
지 가능성들을 일제의 침략으로 왜곡 되었다는 것을 밝히려는 문제의식이 있었다.
반면 고종의 무능과 명성황후를 비롯한 민씨 척족에 의해 피폐해진 조선을 일본이 합병함으로써 한국의 산업화와 근대화에 기여했다는 식민지 근대화론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의 학자들을 통해 정체성론의 일환으로
일본자본에 예속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동시에 민족자본은 철저하게 억압되어 있었음은 물론이다.
2. 공업화의 부문별 비교에서 보면, 공업화를 검토할 때, 어떤 부분이 발달하고 있는 지, 어떤 부분이 낙후한지를 비교검토해야 한다. 그에서 구조적 특질이 살펴질 수 있다.
일제시대 전 기간을 거
지는 근대적인 복지이념에 의해 시행되었다기보다는 그들 식민정책의 일부로서 우리민족이 그들에게 충성을 하게끔 하려는 정치적인 목적을 갖는 자선의 의미가 컸다. 이러한 일제시대에 들어와서 구호법을 제정하고 구빈사업을 실시하였으며 조선구호령을 제정하여 실시하였다. 이러한 식민지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