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면서>
민주주의 국가, 법치 국가를 표명하는 우리나라도 지금의 법을 세워 오기까지 많은 세월에 걸친 축적이 있었다. 드라마 사극에서 볼 수 있는 어명을 받들고 나와 사약을 내리는 장면에서 볼 수 있듯 우리나라에서 임금이 내리는 사약은 왕명을 받드는 것으로 예를 갖추고 받았다고 한다.
고려말기에 이르러 귀족관료와 사원에 의한 토지의 겸병, 압량위천(壓良爲賤) 그리고
통치질서의 문란 등으로 사회적 갈등이 점차 격화되었다. 한 국가의 지배층이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사회변동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새로운 체제로 변화 발전시키지 못하는 경우 새로이 성장하는 개혁계층에
) ․전옥서(典獄署) 등에 배속되어, 고급관원의 시종과 죄인을 문초할 때 매질 ․압송하는 일 등을 맡았다. 보통 깔때기를 쓰고 까치두루마기를 입었으며, 손에는 주장(朱杖)을 들고 다녔다. 영조 때 사헌부에서는 소유(所由), 병조 ․형조 ․오위도총부 ․전옥서에서는 사령(使令),
전옥서를 감옥서로 바꾸면서 출발했지만 근대적 의미의 감옥 형태로 만들어지고 운영된 것은 경성감옥이 최초나 다름없다. 따라서 1908년 일제가 만든 서대문형무소를 우리나라 역사에서 근대식 감옥의 시작이라 해도 무리가 아니다. 다음은 근대 시대 전국에 소재하던 감옥들의 명칭과 현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