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4.3사건은 과거에도 그래왔고, 현재도 진영논리 또는 이념에 의해 다르게 평가되는 역사적 사실 중 하나입니다. 지난 2000년 1월 김대중 정부 당시 제정된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에서는 '1947년 3월 ∼ 1948년 4월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
제주43 사건의 배경은 극히 복잡하고 다양한 원인이 착종되어 있어서 하나의 요인으로 설명할 수가 없다. 동북아 요충지라는 지리적 특수성이 있는 제주도는 태평양전쟁 말기 미군의 상륙을 저지하기 위해 일본군 6만여 명이 주둔했던 전략기지로 변했고, 종전 직후에는 일본군 철수와 외지에 나가 있
모르게 어떤 울분이 치밀어 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지금 필자가 쓰려고 하는 4.3항쟁 같은 생소한 항쟁에 대해서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우리나라에 살면서 내가 너무나도 초라해 보였으며 내가 알 지 못한 이런 항쟁이나 봉기 등을 알아가면서 우리나라역사의 편린을 알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1.제주4.3사건이란?
정의
제주4‧3사건은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하여, 경찰‧서청의 탄압에 대한 저항과 단선‧단정 반대를 기치로 1948년 4월 3일 남로당(남조선노동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무장봉기한 이래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 제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