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사건의 배경은 극히 복잡하고 다양한 원인이 착종되어 있어서 하나의 요인으로 설명할 수가 없다. 동북아 요충지라는 지리적 특수성이 있는 제주도는 태평양전쟁 말기 미군의 상륙을 저지하기 위해 일본군 6만여 명이 주둔했던 전략기지로 변했고, 종전 직후에는 일본군 철수와 외지에 나가 있
52명만이 실형이 선고되고 나머지는 가벼운 처벌로 풀려났다.
경찰은 좌익계가 8월 15일에 해방 2주년을 기하여 다시 전국적인 군중집회를 계획하자 이를 “8. 15 폭동음모”로 간주하고 제주에서만 30여명을 검거하였고 1948년 1월에는 체포된 남노당 제주도당 조직부 연락책의 전향으로 남노당 계보와
간단히 정리해 보자.
2차대전 종전 후, 미국의 세계전략은 1947년 3월 12일 발표된 이른바 '트루만 독트린'을 계기로 큰 전환점을 맞는다. 사회주의 봉쇄정책을 천명한 트루만 독트린은 전쟁 종식 후 급속히 진행된 동원해제와 전쟁경제 해체과정에서 겪어야 했던 위기로부터 탈출하기 위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