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부패, 국력의 약화, 계급적 차별 등 國利民福을 도외시하는 사회현상을 유발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당쟁의 근원은 宣祖 8년(1579) 척신 심의겸과 신진사대부 김효원 사이의 전랑 추천 문제에서 발생되었다. 전랑으로 추천된 김효원을 심의겸의 반대로 늦어지자 반감을 품은 김효원은 후임 전랑으
정치사적 시대구분은 시도, 상고 소분립정치시대(단군~삼한 말 2200년간), 중고 대분립정치시대(삼국 초~남북조1000년간), 근고 귀족정치시대(고려 500년간), 근세 군주독재정치시대(조선 500년간)로 시대를 구분하였다. 사관의 특징은 조선시대의 정파대립을 당쟁이라는 부정적 시각이 아닌 <정당정치의 발
(雍正帝, 재위 1723~35)는 《어제붕당론(御製朋黨論)》을 지었다. 한국에서는 지방별 이해관계, 학문의 계통에 따른 견해차, 연령․직위의 고하(高下)에 따른 시국관의 차이 등에서 서로 입장을 같이하는 인물들끼리 집단을 형성하여 그에 반대되는 집단과 대립․반목하기 시작한 것이 당쟁이다.
정치 개념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활발히 논의되고 있으며 과거에도 있었다. 중국의 붕당정치의 폐해를 지적하고 부정적 당파성을 가진 붕당을 없애기 위하여 송나라 때의 구양수가 《붕당론》을 지은 것처럼 조선 영조 때의 이익(李瀷)은 형 잠(潛)이 당쟁으로 희생된 이유도 있지만, 《붕당론》을 써
정치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느 파에서 이 자리를 차지하느냐는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김효원이 이 전랑 자리에 천거되었을 때 심의겸이 반대하였고, 심의겸의 아우 심충겸이 이 자리에 천거될 때는 김효원이 반대하였다. 이렇게 두 사람의 대립을 둘러싸고 조선시대 최초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