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리는 산서성 심수현 사람으로 그는 가난한 농촌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생산노동에 참가하였다. 조수리는 민요, 지방극을 무척 즐겼으며 한때는 농민들의 음악조직인 팔음회에 참가하기까지 하였다. 그의 이런 경력은 자기의 창작에 있어서 대중적인 스타일을 형성하는데 유리한 토대를 마련해
조수리와 연안문예강화
1942년 5월 모택동의 ‘연안문예강화’가 발표된 후 당시 중공문예 선전부의 총책임자인 주양(周揚)이 모택동의 문예노선을 실천할 만한 작가를 물색 중이었고, 그 결과 문체와 사상이 가장 부합된다고 판단된 조수리를 택했다.
2-3. 조수리 소설의 특징 및 의의
문예대중화논
--조수리의 소설이 지닌 대중화, 통속화, 구어화의 특징은 바로 그를 농민작가라고 일컬어지게 하였다. 그는 소설을 통해 농촌의 현실문제에 대한 옳고 그름과 좋고 나쁨을 제시하여 勸人하려는 의도를 지니고 있었다. 이같은 창작의도를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하여, 그는 농민대중이 즐겨듣고 기쁘게
조수리 소설의 의의
1. 문예대중화논쟁과 민족형식논쟁의 측면
- 통속적인 구어를 사용, 중국전통의 평서체를 채용함으로써 대중어와 구형식의 이용을 실천하고 있다.
2. 농업생산을 담당하는 농민의 삶을 형상화한 농민소설의 관점
- 사회주의적 전망아래 새로운 농민형상을 창조했다. 조수리는
①조수리의 생애
조수리(趙樹理 : 1906~1970):현대소설가이자 희곡작가인 조수리는 산서성(山西省) 심수현(沁水縣)사람으로 원명은 조수례 이었으나 24세 경에 개명하였다.
1906년 산서성(山西省)남부 심수현(沁水懸)에서 출생.
1921년 심수현 고급소학에서 공부.
1925년 산서성 장치사범학교 초급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