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자학파 형성;
박사공경학파, 사추난 학파, 카이난 학파
승려들에 의한, 佛學의 보조적 위치에서 주자학 연구, 강의
주자학이 일본에 미친 영향
1) 일본 사회의 세속화에 기여하고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여 인륜을 가르침
중세적 '憂世'에서 근세적 '浮世'로, 仁義를 중핵으로 하는 주자학적 세속
헤이안 말엽부터 가마쿠라 초엽에 걸친 일본은 일본사상사에 있어 흔치않은 혼돈의 시대였다. 그 혼란의 주된 원인은 교토 조정의 힘이 쇠약해진 데 있었다. 일본 전국의 토지를 교토의 조정이 관리하는 중앙집권 국가체제는 신흥세력인 무사층이 각 지역의 실질적 지배자가 됨으로써 완전히 붕괴되었
일본 사회에 등장한 사회로, 한국에서는 17세기 후반 이래 농노제가 해체되는 반면 자립적 생산 단위로서의 소농이 성장하고, 소농의 촌락공동체, 관제, 사적 토지소유와 지주제, 그리고 일정수준의 시장경제의 성장 등을 토대로 성립했다.
여기서는 소농사회의 형성 과정과 소농사회의 성립 이전과
0. 들어가며
일본 특유의 무사도(武士道)는 1899년 니토베 이나조(新渡戸稲造)가 명예, 용기, 충성, 그리고 당당한 죽음을 강조한 것에서 유래한다. 그에 따르면 무사는 충(忠) 의(義) 용(勇) 인(仁) 예(禮) 성(誠)과 같은 유교의 덕성을 근간으로 하여 주군에 대하여 죽음으로 복종을 해야 한다. 또
일본 양명학의 계보
일본에 있어서 중강등수를 일본 양명학의 시조로 하고, 이후의 태택번산·삼륜집재·좌등일재·대염중재로 이어지는 계보를 "일본 양명학파의 철학"으로서 통일적으로 그려내고 "일본 고학파의 철학"·"일본주자학파의 철학"과 대비한 사람은 정상철차랑이며, 그 이후 이러한 계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