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개혁 사상이 쓰러지면 뒤따라오던 새로운 사회 개혁 사상이 개혁의 짐을 지고 일어 서고 또 그 뒤를 따라 다른 사회 개혁 사상이 새롭게 나오는 양상이 계 속되었다.
■이러한 중국 근대의 주류를 이루는 사회 개혁 사상의 줄기 중 무술변법자강운동에 대해 알아본다.
II. 변법자강운동의 배경
무술개혁이라고 불리 우는 이른바 ‘백일천하’라 불리는 변법자강운동은 짧지만 강한 여운을 남겼다. 변법자강운동을 중국근현대사라는 역사의 무대 위에서 ‘어떤 역할을 배정할 것인가’의 선택의 문제가 남아 있다.
먼저, 변법론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당시의 중국 정세를 살펴봐야 한다. 청
변법운동 이후 1911년 신해혁명 당시까지 중국 사회에서는 사회주의를 포함하여 여러 서양사조에 대해 폭발적인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근대적 서구 사회주의 사상도 이 당시 중국에 유입되기 시작했다. 1899년경에는 중국출판물에서 처음으로 맑스주의가 소개되었고, 일본에서 간행된 <근대사회주의>
중국사회를 뿌리째 뒤흔든 태평천국의 혁명운동과 1890년대의 의화단 운동이 전통질서의 붕괴를 예고하는 밑으로부터의 혁명운동 성격을 보여준 것이었다면, 1860년대 이후 개명된 청조의 관료계급에 의해 추진되었던 동치중흥(同治中興)운동 양무자강(洋務自疆)운동 그리고 무술변법(戊戌變法)운동 등
중국의 근대화운동은 방법론적인 측면에서 보통 세 단계로 구분되는데 첫째가 서양의 기술을 습득하려는 양무운동이고, 둘째가 청조를 그대로 두고 제도 문물을 개혁하려는 변법운동이며, 그리고 셋째가 청조를 완전히 타도해서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려는 혁명운동이다. 여기서는 이 구분에 맞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