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시장경제의 병존을 추구한 이중체계, 이른바 쌍궤제(雙軌制)의 단계를 거침. 이러한 시장 지향의 개혁은 1988넌 고율의 인플레이션과 1989년의 천안문사태로 1차 위기에 직면했으나 이것이 개혁의 대세를 멈추지 못했고 단지 2-3년간의 조정기, 이른바 치리정돈(治理整頓)을 거치게 됨. 이후 1992년
경제적 성과를 바탕으로 1989년 ‘천안문사태’의 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하였다. 1992년부터는 ‘사회주의 시장경제론’을 내걸고 개혁개방을 더욱 가속화했고, 연평균 10%에 가까운 높은 경제성장을 계속하고 있다. 한편 중국은 정치적으로는 여전히 공산당 주도하에 사회주의적 발전의 길을 지켜 나
천안문사태는 그때까지 낙관시 되던 중국경제의 개혁전망을 다소 블루명한 것으로 만들어다. 이에 따라 미국, 일본 등 중국에 대해 정치적 경제적 이해관계를 갖고 있던 많은 국가들은 중국의 정책추이를 주의 깊게 보았다. 이화 관련하여 중국공산당 제13기 7중 전회는 향후 중국의 정책방향을 가늠할
천안문 사건이다.
이 사건의 발생된 배경을 보자면 첫째 당시 등소평을 겨냥한 사인방의 ‘반격우경번안풍’에 대해 대중들이 냉담한 반응을 보였으며 특히 과학기술이 4개현대화(농업, 공업, 국방, 과학기술의 현대화)을 이룩함에 있어서 선도적 역할을 수행한다는 점을 인식한 등소평이 중국과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