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과도통치위원회 (Iraqi Governing Council, IGC)가 수립된 이후에도 모든 정책결정에 있어 최종결정권을 보유하여 CPA에 대한 이라크인들의 불만이 높았다.
CPA가 재건사업용 예산 집행과 이와 관련한 계약을 서방, 특히 미국계 기업과 편중되게 하여 비판을 받았다. 이라크계 기업은 미국계 기업보다 늦
이라크의 주권은 영국의 간섭을 받았다.
2차 세계대전의 종전 후 중동 뿐 아니라 전 세계에 걸친 영국과 프랑스의 퇴조에 힘입어 이라크에 대한 영국의 영향력은 현저히 감소하였으나, 종전 후 국제 정세가 미국과 소련의 양극화 대립체제로 굳어지면서 이라크는 미국을 축으로 한 서구권 세력이 소
중동 지역에서 대칭적인 균형을 변경 시킬 수 있는 주도권을 확보하지는 못했다.
미국은 중동 지역에 대한 집단방위체제 구상을 아이젠하워 행정부 출범 이전부터 논의하고 있었다.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이러한 상황은 1950년 한국전쟁 이후 이 지역에 대한 세력을 잃을 것을 우려하여 더욱 더 빠르
매장량의 70%, 생산량의 30%정도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이 지역의 상황은 세계 원유가격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라크전쟁 이전까지는 이라크의 유전개발권은 프랑스, 중국 및 러시아의 석유회사들이 1991년 걸프전 이후 분할독점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라크전쟁 이후 미국은 실질적으로 국제
2. 정부 수립 과정
1) 연합 임시 행정처 (The Coalition Provisional Authority, CPA)
미국은 2003년 4월 21일 CPA를 세움으로써 이라크 정치를 장악하고, 더불어 CPA는 이라크 과도통치위원회 25명(쉬아파 13, 순니파 5, 쿠르드 5, 투르크만 1, 기독교 1)을 구성하면서 권력을 배분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자신들의 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