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는 미국의 여가문화에서 하나의 커다란 전환점이 주어진다. 1920년대의 미국사회는 도시화가 급진전되면서 사회구조적으로 커다란 변동이 일어나고 소도읍 중심의 생활은 종말을 고하게 된다. 게다가 미국사회의 여가문화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 기본 골격이 이 시기에 형성된다. 그것은 대량소
창경원과 남산공원이다. 우리나라의 근대공원은 도시환경 개선 등의 목적으로 이루어진 서구 근대공원과 같지 않다. 그 까닭은 근대공원이 생긴 시점이 1907년 헤이그 밀사 사건으로 고종을 강제 퇴위시키고 순종을 즉위시킨 뒤 한일신협약을 체결한 해라는 점, 그리고 1910년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고친
창경원이 시초이다. 창경원의 건물 일부가 철거되는 대신 일본식 정원, 동물원, 식물원, 벛꽃거리 등이 들어서면서 서울시민들의 휴양지로 각광받다가 고궁 복원을 위해 1977년 2월, ‘남서울대공원’의 명칭으로 대규모의 공원을 조성하여 창경원의 동물을 옮기는 계획이 발표되었다. 1978년에 서울시가
창경원으로 고쳐 일반에 공개하였다. 이로써 창경궁은 조선 왕조 궁궐로서의 권위를 잃고 한낱 서울 시민의 유흥장으로 변모해버렸다. 정부 당국은 해방 후에도 수십 년 간 무심하게 놀이터로 이용해 오다가 1984년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궁의 복원 사업에 착수하였다. 우선 창경원이라는 명칭을 본래대
2)창경궁
조선의 궁궐 중 하나인 창경궁은 일제 이후 사람들에게 창경원(昌慶苑)으로 더 잘 알려져 있었다. 창경궁은 일제에 의해 가장 처참하게 유린당한 궁궐로써 뼈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사진 2. 춘당지
일제는 순종을 위로한다는 명목을 앞세워 선인문 보루각터에 동물원을 짓고, 곰, 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