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기간에 발표의 주제였던 이광수, 김동인과 동시대를 살았던 염상섭은 그러나 그들과는 완연히 다른 일생, 다른 유학생활 겪는다. 김동인처럼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나 김동인처럼 탐미주의로 흐르지도 않고, 이광수처럼 노골적인 친일을 하지도 않는다. 1921년 발표한 횡보(橫步)의 소설 「표
창섭은 누이가 의사의 오진(誤診)으로 죽자 농업학교로 진학하라는 아버지의 뜻을 어기고 서울로 가서 의전(醫專)에 들어가 의사가 된다. 그는 열심히 노력하여 맹장 수술 분야에서 최고의 권위자가 되고 병원을 운영하여 성공한다. 창섭은 병원을 확장하기로 하고 모자라는 돈을 고향의 땅을 팔아 채
창섭, 둘째 형 명섭이 일본에 유학중이었다. 창섭은 유년학교를 거쳐 일본육군사관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6개월간 일본어를 배웠다.
1915년 19세에 경도부립 제이중학교로 전학하였다. 외국인으로는 유일한 학생이었으며 「우리집 정월」로 문장력의 칭양을 받기도 한다. 이때 맏형 창섭이 경도 주둔
창섭은 성공한 의사이며 아버지는 근검한 자작농이다. 창섭은 아버지를 서울로 모셔가려 하지만 아버지는 천지만물의 근원이며 조상들의 얼이 깃든 땅을 떠날 수 없다 한다. 창섭은 아버지와 세대차이를 느끼고 서울로 돌아간다.
4) 외로운 아이
순길이는 같은 반 친구 인근이가 담배를 가지고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