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후 경실무제환심 현전문
진후는 아들을 낳지 못하고 또 다시 기이한 질투가 있어서 스스로 위자부와 총애를 다툰 뒤에 마침내 무제의 환심을 잃었다. (앞 문장에 나타난다.)
子夫越加得寵, 陳后越加失勢, 窮極無聊, 乃召入女巫楚服, 要他設法祈禳, 挽回武帝心意。
자부월가득총 진후월가실세 궁극
총후(銃後)는 우리 부녀가 지킬 것이다. 남아로 태어나서 오늘같이 생의 참뜻을 느꼈음도 없었으리라. 학병 제군 앞에는 양양한 전도가 열리었다. 몸으로 국가에 순(殉)하는 거룩한 사명이 부여되었다”
문화·교육가로서, 또 여성학자로서 그들의 역할에 있어서는 절대적으로 크다고 할 수 있지만
아버지가 같은 일본인 혼혈의 배다른 동생이 만나 서로 핏줄의 인연을 확인하는 마지막 대목에서는 내선일체론, 총후봉공론, 대동아공영론 등의 일제 시책에 입각해서 쓰여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친일문학이란 본래적 의미에서는 일본과 친화적 관계를 가지는 문학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Ⅰ. 서 론
부모의 마음은 자식을 향한 사랑하는 마음은 똑같다. 그 와중에 자식이 먼저 죽게되면 부모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기게 될 것으로 그와 관련된 글을 남긴분이 정약용과 송준길이다. 정약용(丁若鏞, 1762년 8월 5일(1762년 음력 6월 16일) ~ 1836년 4월 7일(1836년 음력 2월 22일)은 조선 후기의 문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