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100년에 걸친 몽골공주와의 결혼
고려25대 임금 충렬왕부터 31대 임금 공민왕까지 약 100년간 고려의 왕들은 모두 몽골 공주를 아내로 맞아들였다. 그동안 5명의 고려왕이 8명의 몽골여인과 결혼했다. 충렬왕, 충선왕, 충숙왕, 공민왕이 몽골에 인질로 잡혀가 몽골 공주와 결혼한 고려왕들이다. 왜 임
여성과 문화 문학
유리왕의 시조 ‘황조가’
화희와 치희의 싸움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
유리왕 에 대한 짧은 소개
*고구려 제 2대 왕. 유리, 유류, 주류, 또는 유리명왕이라고도 합니다.
* 유리왕은 부여에서 홀 어머니 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어느 날 지나가던 여인의 물동이를 새총으로 쏘게
치희를 꾸짖기를 ‘너는 漢家의 婢妾으로 어찌 무례함이 심한가?’하니 雉姬는 부끄러워 하면서 원한을 품고 本家로 돌아가 버렸다. 王은 이 말을 듣고 곧 말을 달려 쫓아 갔으니 雉姬는 노하여 돌아오지 아니하였다. 일찍이¹)(이 때 잠깐)王은 나무밑에서 쉬는데 꾀꼬리들이 모여드므로 이에 느끼어
치희(雉姬)였다. 두 여자는 사랑을 다투어 서로 화목하지 못하였는데 왕이 양곡(凉谷)의 동서에 동궁(東宮)과 서궁(西宮), 두 궁전을 짓고 각각 살게 했을 정도로 싸움이 잦았다. 훗날 왕은 기산(箕山)으로 사냥을 가게 되어 7일 동안 왕궁을 비워 두었는데 이 사이 두 여자는 또 싸우게 되었다. 이때, 화희
치희(雉姬)를 그리는 《황조가(黃鳥歌)》를 지었으며, BC 9년 선비(鮮卑)를 공략하여 항복받았다. 3년 도읍을 홀본(忽本)에서 국내성(國內城)으로 옮기고 위나암성(尉那巖城)을 쌓았다. 13년 부여(扶餘)가 침공해 오자 이를 격퇴하였다. 14년 군사 2만으로 양맥(梁貊:小水貊)을 쳤으며, 한나라 고구려현(高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