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혼례
고려 시대까지의 혼인 의례는 남자가 여자 집에 가서 결혼하고 살다가 자식이 크면 집으로 돌아가는 서류부가혼이었다. 조선 시대에 통치이념이 유교로 정해지면서 중국의 주자가례가 도입되어 친영제가 권장되었다. 친영제는 신랑이 신부집에 가서 신부를 데리고 본가에 와서 혼례를 치
Ⅰ. 일본의 대아시아주의
일본의 아시아주의는 대일본주의와 결합하여 대아시아주의로 발전하였다. 만주사변이후 일본 군부가 일본정치에서 득세하게 되었고, 이제 일본의 외교는 일본 군부가 대외에서 일으킨 군사행동을 그저 합리화하고 정당화하는 것에 불과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일본정부도
친영례로 제시되는 규범의례와 서류부가혼의 실행의례로 나누어 질 수 있다. 친영례의 혼례규범은 여말선초『주자가례』의 도입과 활용의 권장을 통해 논의되기 시작하여 세종대에 제정된『오례의』에 의해 그 절차가 제시되었고 이후 수정, 보완되어 1474년『국조오례의』로 정리되었다.
1. 들어가는 말
필자는 지난 10월 2일 한국 민속촌을 찾았다. 민속촌을 찾은 이유는 우리나라의 다양한 민속 문화들을 체험하고자 하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목적은 우리나라의 전통혼례의 체험 때문이었다. 한국 민속촌에서는 전통혼례식을 1일 2회 공연을 하기 때문에, 지금껏 전
친영)
: 신랑이 신부의 집으로 찾아가서 신부를 직접 맞이하여 신랑의 집으로 데려와 그 집에서 신랑과 신부가 서로 절을 하면서 치르는 혼례를 ‘親迎式婚禮(친영식혼례)’라고 한다. 여기서 쓰이는 ‘親迎(친영)’이라는 말은 ‘新郞親迎新婦(신랑친영신부)’를 줄인말이다. 결국 ‘친영’이라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