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조로 들어와서는 유교의 가르침에 의한 혼례가 유가의 예문에 따라 행해졌다. 우리가 여기에서 다루고자 하는 것도 유교가 조선의 정치이념이 되면서 혼례에 끼치는 영향이다.
조선시대 혼례절차는 친영례로 제시되는 규범의례와 서류부가혼의 실행의례로 나누어 질 수 있다. 친영례의 혼례규범
혼례식의 절차
- 혼례식의 순서는 전국적으로 거의 같다.
- 식순을 잘 아는 부락의 노인이 예식을 지휘,
- 식순을 분명하게 알리기 위하여 홀기(笏記) (혼례나 제례 때에 의식의 순서를 적은 글)를 부른다.
예) 경북 안동군에서 행하는 홀기
◦ 서지부가(壻至婦家) - 신랑이 신부집에 도착하여 예식
친영의 예법은 하늘이 땅보다 우선하고 임금이 신하보다 우선함과 같은 이치라고 파악하여, 왕실혼을 제외한 사대부가에서조차 실행이 되지 않아서 절충형인 半親迎이 채택되었다고 서술했다.
기존의 연구내용들만으로는 조선시대에 혼인제도가 어떠한 이유로 변천되었는지 제대로 알수가 없어서
혼례식의 절차
- 혼례식의 순서는 전국적으로 거의 같다.
- 식순을 잘 아는 부락의 노인이 예식을 지휘,
- 식순을 분명하게 알리기 위하여 홀기(笏記) (혼례나 제례 때에 의식의 순서를 적은 글)를 부른다.
예) 경북 안동군에서 행하는 홀기
◦ 서지부가(壻至婦家) - 신랑이 신부집에 도착하여 예식
혼인 또한 시대가 변함에 따라 그 양태를 달리한다. 그렇다면, 역으로 혼인의 변화 양태를 추적해 나간다면 당시 사회의 변화를 유추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마치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보고 그 ‘본 모습’을 추측해 내는 것과 같다. 그렇기에, 본 과제 수행에서는 시대 변화, 구체적으로 조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