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법칙은 내용, 즉 두 사건 사이의 구체적 관계와 보편성이라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내용은 경험을 통해서 인식되며, 형식은 경험을 통해서 정당화된다. 이러한 법칙은 보편적 명제와 자연필연성의 두 가지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귀납논리는 철학자들에 의해 몇몇 문제점이 지적되어 왔다.
칸트의 철학은 그 당시나 현대에 있어서 막대한 영향을 끼쳤음은 부인할 수가 없다.
Ⅱ. 칸트의 사상
1. 칸트의 선의지
선의지는 옳은 행동을 오로지 그것이 옳다는 이유에서 항상 택하는 의지이다. 선의지는 행위의 결과를 고려하는 마음이나 또는 자연적인 경향을 따라서 옳은 행동에로 쏠리는 의
칸트 철학의 체계성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에 어려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칸트 역사철학의 궁극목적인 개념은 자연을 지침으로 삼는 하나의 ‘목적론적 역사철학’으로 규정될 수 있다. 이 개념은 그러나 이론적 인식 목적에 사용되는 판단의 규제적 원칙이 아니라 오히려 도덕적 행위의 동력으로
자연과학을 폭넓게 공부했는데 여기서 뉴턴의 물리학을 접하게 된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생계를 위해 근교의 세 가정을 전전하며 가정교사 생활을 하였다. 31세에 통과한 논문으로 사강사가 되어 여러 과목을 가르쳤는데 교수 자리를 얻는 것은 쉽지 않았다. 1764년(40)에 시학 교수 자리가 제의되었으
프로이센은 후발산업국가로 급성장하며 일급국가로 발을 내딛고 있었다. 칸트가 청년기에 왕은 프리드리히 1세였는데 가부장적인 정치체제 아래 풍부한 자원과 군사력을 바탕으로 왕권신수설을 유지하고 있었다. 프리드리히 2세는 더 이상 가부장제로 몰고 가려 하지 않았으며 문화정책을 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