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드의 정신분석이론들은 대체로 새로운 가설을 정립한 뒤 그것들을 여러 실험을 통해 증명하는 형식을 지녔다. 따라서 이러한 이론들을 잘 이해하려면 인위적인 요소를 줄이고 최대한 우리의 경험에 근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문학작품을 분석할 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즉 그 작가의 표현
안락하고 따뜻하고 평안하다. 가끔 손과 발을 움직여 나의 체온과 같은 주변의 물을 휘저어 보기도 하고 조금 머금었다 뱉어보기도 한다. 주변은 모두 나의 몸과 다를 바 없다. 단조롭고 굴절을 거친 투과음이 고요히 내 주변의 분자들을 진동시킨다. 이 고요하고 안정된 진동은 영원히 계속 될 것이다.
인간이 합리적 이성을 의심하기 시작하면서 인류의 지성사는 획기적 전환기를 맞았다. 데카르트의 코기토와 기독교적 교리가 이성 이외의 그 무엇이든 금기시하던 시절에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던 담론들이 수면 위로 급부상하면서 인간 이성의 절대성은 유물론에게 그 자리를 내주게 되고 노동자의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은 환자의 말을 주의 깊게 듣는 활동에서 출발한다. 언어에 대한 성찰은 정신분석의 본질적인 측면이다. 이런 의미에서 언어예술인 문학과 정신분석 비평의 만남은 매우 운명적이라 할 수 있다. 독자는 작가의 언어로 표현된 텍스트를 정신분석 자료로 받게 된다. 그 속에서 검열된
타나토스와의 모순적 관계가 '사랑'의 시작과 끝을 이끄는 수레의 바퀴와도 같은 것이라면, 우리는 그 둘의 관계를 좀 더 명확히 짚어보지 않을 수 없다. 자기 안의 본능이 어떻게 발현되는지를 안다면, 그것을 올바른 방향으로 조정하는 일이 조금은 쉬워질 수도 있다. 하물며 인간의 삶의 영원한 수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