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인으로 참여하면서
시작활동이 본격화.
1937 (20세) 자오선 동인으로 참여,
8월 첫 시집 <토벽>간행
1938 (21세) 명치대학 중퇴 후 귀국 및 아버지 사망
서울 종로구 남만서방 경영
1939.7 (22세) 두 번째 시집 <헌사> 발행
1941 (24세) <귀촉도> <귀향의 노래> 등을
<문장>, <춘추> 등에 발표.
1945 (28세) 신장병으
동인으로 참여하면서 시작활동이 본격화 되었다. 그리하여 이듬 해 첫 시집 성벽이 간행되면서 시단에서 크게 주목을 받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그가 월북했다는 이유로 그의 시작활동 일체가 금기되어 왔기에 전혀 그 가치를 논의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늘 뒷전에 묻혀 있다가 1988년 단행된 일련의
동인지 『요람(搖籃)』의 산파역을 맡으며 습작활동을 시작했다. 『요람』의 동인은 고보와 전문학교 학생들로, 지용과 박제찬, 박팔양, 김화산 등이며, 지용이 간부로 있는 휘문고보의 등사기를 이용해서 제작하였다. 지용은 『요람』에 『정지용시집』 3부에 수록된 동시의 절반 이상을 발표했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