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머리말
내가 북위의 대외정책을 조사하게 된 데에는 먼저 북위가 이민족이지만 한민족과 융화도 잘했지만 상당히 힘이 있는 나라인 것 같아서 그냥 호감이 있었다. 그래서 그러한 북위가 호북지방을 통일해 나가면서 어떤한 대외정책을 펼쳐나갔는지 한번 알아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전진이
토욕혼(土浴渾)에 당의 공주를 시집보내는 정략결혼을 추진했다. 토번은 토욕혼과 긴장관계에 있었기에 635년 송찬간포는 사신을 보내 당 공주와 혼인을 청원한다. 그러나 당 태종(太宗)은 이들의 요구를 거절했고 그 대가는 컸다.
태종 정관(貞觀) 8년, (토번은) 처음으로 조정에 사자를 파견하였다. 황
토욕혼의 세력을 쫓아버리고 다시 이오에도 진출하여 같은 해 유명한 수의 서역4군과 이오군을 설치하였다. 수 양제가 동서교역을 적극적으로 장려한 것은 놀라울 정도였다. 수 양제는 여러 사신들을 서방으로 파견하여 관무역의 부활을 꾀하는 한편, 배구를 하서 지방으로 파견하여 서역 제국의 상인
이어간 국가였다. 626년, 이세민(당태종)은 현무문의
변을 통해 형제와 조카들을 죽이고 고조로부터 양위 받아 황제로 즉위하였다. 630년, 이세민은 10만 대군으로 동돌궐을 침공하여 동돌궐을 정복하였으며 634년에는 토욕혼을 정벌하여 서쪽 지역을 장악하였다. 이 과정에서 실크로드 통로를 확보했다.
토욕혼이나 고창국을 위시하여 많은 유목민족을 굴복시키고 더구나 신라의 군사력과 결합되어 있는 세력이었다. 이러한 당에 대하여 고구려는 그 실체를 과소평가하고 적극적인 대처를 다하지 못했던 것이다.
둘째는 당나라의 고구려에 대한 침략의도가 거의 확고하였던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