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어뱅크는 『아시아학회보』1970년 4월호에 펙에 답하는 글을 발표했다. 그는 “우리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의견에 둘러싸여 있다. 그 견해는 미국의 중국 연구가 최악이 된 이유를 미국 자신이 세계에 발을 지나치게 뻗었다는 사실에서, 즉 미국 제국주의 혹은 적어도 미국 내부, 그러므로 우리 자신의
페어뱅크(John K. Fairbank)와 라이샤워(Edwin Reischauer)의 공저인 동아시아: 위대한 전통(East Asia: The Great Tradition)(1960)의 출간을 전후하여―비로소 동아시아라는 말이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김경일 1998, 31). 따라서 김경일은 서구에서 ‘동아시아’라는 말의 등장 경위를 다음과 같이 간명하게 요
페어뱅크(John K. Fairbank)등 자유주의 학자들의 의견을 교환하였다. 당시 학계에서는 자유주의자들이 주류였고 이 모임에서 중화인민공화국과 외교관계를 확립하기를 기대한다는 합의가 도출되었다. 1950년 1월 애치슨 선언에서 미 국무부는 자유주의학자들의 견해를 상당 부분 수용하여 한반도를 미 극
공식적인 원정대는 바스코 다 가마나 콜럼버스와 같은 의미의 항해는 아니였음.
중국의 원정대는 해적행위나 식민사업 같은 것은 말할 필요도 없고, 상업이 아니라 외교적 목적을 가진 원정대.
가장 놀라운 사실, 1433년 원정이 끝난 후 아무도 그 뒤를 잇지 않았다는 점
-존 킹 페어뱅크,<신 중국사>
페어뱅크는 중국 정치 문화의 특성을 중국통치체제 특유의 ‘음모 메커니즘’에 의해 정권의 폭력성이 반복 표출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즉, 중국통치체제내에서 정책이라 함은 곧 통치자의 도덕적 행위, 따라서 그의 정통성의 일부였으므로 자유로운 반대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여지가 부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