읍지』,
『견성지』에서도 돌로 쌓았다는 기록과 함께 여러 가지 당시 성에 관한 기록을 찾을 수 있다.
현재 성의 옛 자취를 엿볼 수 있는 시설물로는 남쪽과 북쪽의 문터, 성벽 바깥쪽에 사각형 모양으로 덧붙여 만든
치성 4개소, 건물터 6곳, 배수시설이었던 수구터, 장수의 지휘대였던 장대터, 적의
조선전기의 역사인식 - 단군, 기자 신앙, 동국여지승람
<박광용, 단군신앙의 어제와 오늘>
1. 고려시대
13세기 이전 고려 사람들은 대체로 단군을 평양의 사당에 모셔진 지역 시조신 또는 황해도 구월산 지역의 삼성사 등에 모셔진 민간신앙적 자연신으로 생각했는데 몽고침략 전후부터 국가시조, 역사
평양의 부벽루와 진주의 촉석루와 함께 한국의 3대 명루로 일컬어지고 있다.
2. 표충비각
․위치 : 밀양시 무안면 무안리 903-2
표충비는 1742년 10월에 사명대사의 5대 법손인 태허당 남붕선사가 경북 경산에서 돌을 가져와서 현재의 자리에 세운 것으로 좌대를 포함한 총 높이는 비신의 높이 275
읍지(邑誌)
황진이는 중종 때 사람으로 황진사의 서녀이다. 어머니 진현금은 병부교 아래에서 물을 마시고 마음이 통해 진이를 잉태했는데, 해산 때 이상한 향기가 3일 동안 가득 찼었다.
- <소호당집> 조선말기 김택영의 시문집
진이는 황진사의 서녀인데, 진사의 첩은 진현금이다. 진현금은 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