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들의 혁명에의 적극적 참여를 높이 평가한 바 있다.
이에 프랑스혁명 당시 농민의 혁명에 대한 의지 혹은 의식을 알아 보기 위하여 우선 혁명직전 농촌의 모습과 그 구성원 등을 살펴보고 농민층의 의식화 과정에 대해 조사해 보고자 한다. 이를 바탕으로 프랑스대혁명에서 농민의 역할과 그들
성직자들은 전체인구의 1%가 이에 속하며 소유 토지는 전체토지의 20%에 해당하는 계층이었다. 이들은 영주로서 봉건지대를 받고 십일조를 징수하는 특권과 면세의 혜택을 누렸다. 제2신분이었던 귀족들은 40만 명 정도로서 전국토의 1/5에 속하는 넓은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다. 그들은 농민으로부터 지
성직자의 수는 총인구 2700만명 중에서 극소수인 10만명 정도였지만, 전국토의 1/10을 소유하고 있었으며 영주로서 봉건지대를 받고 십일조를 징수하는 특권과 면세의 혜택을 누렸다. 제2신분인 귀족은 40만명 정도로서 전 국토 1/5 정도의 넓은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다. 그들은 농민으로부터 지대를 받았
혁명사상의 기초가 되었다. 프랑스왕권은 루이 14세(재위 1643∼1715)가 완성한 절대주의 체제에 의해서 여전히 국왕친정과 신권이론(神權理論)을 받들고 국가와 인민 위에 군림을 계속하였다. 신권왕정 밑에서는 모든 국민이 단순히 국왕의 신하에 불과하다. 그 위에 소수의 귀족 ·성직자들만이 별도의
농민들은 귀족이나 지주에 대한 갖가지 부담 때문에 생활에 압박을 받았다. 이와 같은 사회 체제 밑에서 제 3신분인 상공업자와 농민들 사이에서 불만이 높아져 갔으며 사회를 개혁하려는 기운이 움트게 하였다. 당시 프랑스에 유행한 계몽사상은 시민 계급(부르주아지) 사이에 널리 번져 나가, 구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