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 신학」,(서울:한돌출판사,2001), pp389-390.
신정론, 혹은 하나님의 공의 문제는 특별히 이스라엘 해석자들에게 있어서 매섭고 강렬하였다. 이스라엘의 유일신론은 그 문제를 야웨 이외의 하나님이나 알려지지 않은 하나님에 대한 위반으로 바꾸는 설명을 용납하지 않았다. 신정론은 좋은 일이든
고난은 공평하지 못하게 약한 자나 순결한 자에게나 똑같이 오며, 이것은 옛적부터 지각이 있는 사람에게 의문점이 되어왔다. 이러한 고난은 인격적인 사랑의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올때는 특히 아픈 것이었다. 또한 이 문제는 신앙이 없는 사람들도 알고 싶어한다.
욥기는 통상적으로, 이유 없
이스라엘 사람들이나 모든 에돔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것들이다. 참으로 중요한 것은 욥기의 저자가 차띠크(의로운, 또는 올바른 사람)에 대한 자기 나름의 이해를 서술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선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말하며, 덕스러운 것이 무엇인지를 밝히기 위해 그 반대되는 악행들에 대해
있다고 해도 이것이 히브리인의 정경 속에 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욥기의 이해는 그 히브리 적인 배경이해가 필요하다고 본다. 아무리 그 속에 이질적인 요소가 섞여 있다고 해도 현형의 책으로 기록하고 편찬한 사람은 이스라엘 적인 문화적 소양을 가진 사람이요 그 역사적 현실에
하나님께서 모든 가족이 토지에 대해 평등한 권리를 누리기를 원하셨다는 것을 말해 준다. 23절에서 토지를 영영히 팔지 말라고 하신 것은 각 가족이 각자의 기업을 누리는 이상적인 상태가 파괴될 것을 우려해서 하신 말씀이다. 토지를 한번 팔면 영원히 다시 되돌릴 수 없다고 한다면, 토지에 대한 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