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제 44권 커피의 도입에도 “특히 왕가에서 커피를 즐겨 마셨는데 고종은 1896년 아관파천 당시 러시아 공관에 있는 동안 익숙해져 아주 좋아했다.“고 언급되어있다.
이 때문에 대게 고종은 커피를 최초로 마신 한국인이라고 전해진다. 다음 장에서 이에 대하여 더욱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
사람들은 서울을 ‘교회당들의 도시(A city of churches)'라고 부르기도 한다. 한국 기독교는 미국 다음으로 많은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으며,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가 우리에게 기독교를 전해준 미국, 영국, 캐나다나 호주에 있지 않고 수도 서울 한복판에 있다는 사실도 한국 기독교의 양적인 면에서 빠른
한국의 개신교의 방향을 잡은 것이다. 분명한 것은 선교를 받은 다른 나라에 비해 특히 일본에 비해 비약적인 발전을 하게 된 이유는 이런 상황이 우리에게 꼭 맞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니비우스의 정책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언더우드가 채택한 것과 한국이 개신교를 효과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지에
한국에 최초의 주재선교사 입국하기 전에 이미 여러 경로를 통해 한국선교를 시도하였다. 개신교선교사로서 최초로 한국을 방문한 사람은 귀츨라프(Carl.A.F.G tzlaff)였다. 그는 네덜란드 선교회 소속으로 동남아선교의 뜻을 두고 중국에 머물던 중이었다. 그러던 중 영국 동인도회사의 통역관으로 임명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