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들을 보면서 19세기 우리나라와 중국의 동학농민전쟁과 태평천국운동은 그 민중적 질곡의 속박을 자각을 통해 해방을 이루어내는 모습에서 오늘의 산적한 문제를 올바르게 바라볼 수 있게 할 것이라 생각된다. 이 장에선 한중일3개국의 현대사를 비교 중 홍수전과 전봉준을 비교 연구하고자 한다.
운동의 흐름을 살펴보고 비교해보는 것은 매우 의의 있을 것이다. 19세기 하반기에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두 차례의 대규모 농민혁명이 발생하였었는데, 바로 중국의 태평천국농민운동과 조선의 동학농민혁명이었다. 이 두 농민운동은 시차는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그 성격의 유사점이 상당수 발견되
호소는 관군 측에 반영될 수가 없었다. 계속되는 일본군과 관군의 추격으로 농민군은 계속 남쪽으로 후퇴하면서 대부분 해산되었지만 일본군은 끝까지 추격하면서 이들을 격퇴하였다. 이후 1894년 12월 2일 전봉준이 체포되었고 김개남 역시 같은 날 체포되면서 동학농민운동은 막을 내리게 된다.
태평천국운동과 동학농민운동 또한 이러한 사건들 중 하나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1850년대에 중국에서 일어난 태평천국운동과 1894년에 일어난 동학농민운동에 시기적으로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비슷한 이 두 사건을 비교 분석하는 작업은 역사를 연구함에 있어 매우 흥미 있는 일이라 할 수 있다.
태평천국 지도부의 내부발생까지입니다. 태평천국군이 남경을 점령하자 홍수전 등은 이곳을 수도로 정하고 또 양강총독아문을 천왕부로 하고 국가로서의 체제도 점차 갖추었습니다. 태평천국의남경정도는 청조지배체제에 커다란 충격을 줌과 동시에 잠재적 반란 농민을 고무시켜 그들로 하여금 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