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을 주장하며 자본주의 체제를 붕괴시키고자 함으로써 냉전시대가 개막되었다. 전쟁 후 미국의 영향력이 아시아에 퍼지면서 일본과 대립하게 된다. 전쟁이 시작하면서 일본도 역시 아시아의 점령을 진행해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독일령이었던 중국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해방을 준비해나가는 시기였다
이런 준비 과정 속에서 1945년 8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되고 소련이 참전하면서 1910년 국권을 빼앗긴 이후 8.15일 마침내 일제의 강점에서 해방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의 일본의 패전이 8·15광복의 표면적이고 직접적인 계기이지만 1930년대부터 194
패전국의 점령지에 대한 미국의 정책은 식민지 체제의 붕괴와 민족 해방운동의 승리, 사회주의 국가의 다수 출현 등과 같은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전반적 위기의 심화에 대응한 세계 자본주의의 수호자로서의 미국의 입장과 이해 관계의 한 표현으로 파악될 수 있다. 그러나 해방후 남한에 진주한
패전국의 점령지에 대한 미국의 정책은 식민지 체제의 붕괴와 민족 해방운동의 승리, 사회주의 국가의 다수 출현 등과 같은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전반적 위기의 심화에 대응한 세계 자본주의의 수호자로서의 미국의 입장과 이해 관계의 한 표현으로 파악될 수 있다. 그러나 해방후 남한에 진주한
미점령군은 일본을 점령함과 동시에 일본에 농지개혁을 실시했다. 그 결과 일본은 패전국임에도 우리나라보다 훨씬 더 빨리 경제를 안정시키고 성장할 수 있었다. 이처럼 혼란한 때에 국외로 이주했던 230만명의 국외동포들이 해방 직후 한꺼번에 환국하면서 한국은 식량은 물론 다른 생활품 부족이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