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진상조사보고서의 1950년 한국전쟁 이후 부분은 주로 ‘잔여무장대의 궤멸’에 초점을 두고 서술돼 있다. 잔여무장대의 소탕에 이렇게 많은 부분이 할애될 필요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주한미대사관은 1950년 8월 13일 제주도에서 활동하는 신부가 제주도에서 공산주의자들이 활동하기 시작
Ⅰ. 서론
1960년 4ㆍ19혁명은 한국전쟁과 이승만 반공독재체제하에서 도민들이 국가에 대하여 가졌던 공포감, 불만을 한꺼번에 분출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4ㆍ19가 일어나자 10여 년간 입을 굳게 다물었던 제주 4ㆍ3사건 피해유족들은 거리낌 없이 자신들의 경험을 털어놓았다.
1960년 5월 23일
다랑쉬굴의 비극 :4·3항쟁 당시 다랑쉬 오름은 구좌면 유격대의 전락적 요충지였을 것으로 추정되며 1948년 11월 18일을 전후하여 김진생씨 일가, 고순경씨 형제, 박순녀 씨 가족, 이홍규씨 가족 등 대부분 부부와 어린아이가 딸린 가족단위로 다랑쉬굴 근처로 피난하였다. 다랑쉬 굴속에 있었던 고태원,
다랑쉬굴 사건’에 대해 매우 잘 알고 있어서 물어 봤다가 굉장치 충격적인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다랑쉬굴 사건’이란 다랑쉬 마을 근처에서 군인들이 피난민과 그들의 은신처인 작은 굴을 발견한 것에서 비롯된 사건인데, 군인들은 굴 밖에 있던 사람들을 총살한 후 굴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나오
모습
“다랑쉬굴의 비극”
다랑쉬굴의 유해는 발견 당시부터 4.3 참극의 상징이 되었다. 그 희생은 저항도 못하는 주민들을 무참히 살해한 초토화작전의 실상이었고, 캄캄한 굴속에 갇혔다가 40여 년 만에 햇빛을 보았지만 허무하게 화장된 것은 진실을 은폐하고 외면하려고 했던 당시대의 현주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