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
BC 216. 8. 2 벌어진 제2차 포에니 전쟁 중의 결전의 하나
남(南)이탈리아의 칸나이에서 카르타고의 장군 한니발이 5만의 병사를 이끌고 8만여의 로마군에게 쾌승을 거둔 전투.
열세의 병력으로 우세한 병력을 포위 ·섬멸한 전례(戰例)로서 유명
→ 슐리펜작전의 이상
1. 영국과의 식민
2. 주요 국가의 전후 경제 변화
1) 독일
① 영토 상실과 시설유지
독일은 전쟁에 패함으로써 해외식민지들을 잃고, 가장 중요한 석탄철광 공업지역인 알자스-로렌지방, 그리고 루르 지방을 프랑스에게 빼앗기고, 주요 농업지역의 일부를 폴란드에게 강제로 양도 당하였지만 전쟁의 대부분을
사라예보에서 울린 두 발의 총성이 제1차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되었다는 것은 잘 알려졌다. 오스트리아 지배하에 있던 세르비아의 비밀 결사 소속 한 청년이 사라예보를 방문한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를 권총으로 암살한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사라예보'사건이다. 이 사건이 1차대전의 직접적인 발
사라예보에서 오스트리아 육군 대연습의 통감(統監)으로 이곳을 방문한 오스트리아의 황태자 페르디난트 부부가 세르비아의 참모본부 정보부장이 밀파한 7명의 자객 가운데 G.프린치프의 흉탄에 맞아 피살되었다. 오스트리아는 이 사건을 이용하여 세르비아를 타도하고, 발칸에서의 열세를 일거에 만
사건 한 달 뒤인 7월 28일 오스트리아는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했다. 이어 오스트리아 편에 선 독일이 세르비아를 후원하는 러시아와 프랑스에 선전포고를 했다. 1차대전이 발발했다. 한 발의 총성, 아니 하나의 테러사건이 세계대전을 촉발시킨 것이다.
19세기말부터 20세기 초까지 테러리즘은 본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