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지하게 노력해야 할 것이다.
물론, 지난 1985년 이후 이산 가족 교환 방문은 이후에도 2차, 3차, 4차등으로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그리하여 이제는 대규모 상봉도 가능하게 될 것이고, 이것이 남북 관계 발전의 촉매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바탕 위에서 이산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시
남북 이산가족들이 상봉한다고 해서 통일이 눈앞에 있다고 할 수는 없다. 1970년대 세계 냉전체제가 무너지고, 한반도에도 7·4 남북공동성명 등으로 유래 없는 평화의 기운이 싹텄으나 대화가 진행되면서 양측의 의견대립으로 남북대화는 다시 교착되었고 90년대까지도 어느 정도의 교류는 있었지만 긴
남북한관계는 기본적으로 적대적이고 대립적인 틀 속에서 유지되고 있으나, 다른 한편 교류와 협력도 이루어지고 있다. 체제의 상극에도 불구하고 동일민족이라는 감상적 차원과 언젠가는 통일을 해야한다는 잠재의식은 분단국이 아닌 일반적인 적국의 관계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74년이다. 70년대 초반 박정희 정권과의 대화에서 미군 철수를 전제로 한 남북 평화협정을 주장하던 이북은 박정희 정권이 군사적 실권은 물론 평화체제 실현에 의지가 없다고 판단하고 대미 직접협상에 의한 평화 보장 체제를 실현하기 위해 전격적으로 대미 평화협정을 제안한다. (이 시기는 김정일
남북정상회담으로 남북한 경제협력이 궤도에 오르고 남북한간에 평화를 정착시키는 계기를 잡게 됨에 따라 불투명한 상태에 있던 북미 협상과 북일 수교 교섭에도 상당히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왔다. 북한 미사일 위협을 둘러싸고 전개되는 북미 협상이 북미 공동성명으로 획기적 진전을 보이고 있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