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피는 계속 흘러 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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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는 계속 흘러야한다
제주도에 온지도 어언 9년이 흘렀다. 그리고 그 9년간 무심히 지나쳤던 굴이 꽤 많았던 것 같다. 마찬가지로 지나쳤던 시멘트 방공호도 참 많았던 것 같다. 주변에 관심이 없었던 나는 그저 출입이 막힌 천연동굴 쯤으로 알기 일쑤였고, 공사하다가 만 시멘트 반죽인 것으로만 알고 있었다. 그게 일본군이 제주도에 남긴 흔적이라는 사실은, 최근에서야 정확히 알게 되었다. 자라오면서 그런 사실을 접할 기회는 꽤 많았음에도 어떻게 모를 수 있었는지 신기하다.
제주도는 이미 오래전부터 한국의 경제, 정치, 외교, 군사적 요충지로 여겨졌다. 일본군이 남방으로 침투할 연합군을 저지하기위해 미로형 땅굴요새를 설치하고 오름에 대공포대를 설치하고, 비행장을 세우고, 방공호를 설치하고, 군사적으로 온갖 설비를 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1930년대 초 일본 해군 비행장이 대정읍 모슬포 지역에 설치된다. 알뜨르 비행장이다. 1937년부터 알뜨르 비행장은 본격적으로 기지 역할을 하게 된다. 바로 난징 해양 폭격에 사용된다. 초기에는 나가사키현의 오오무라 항공기지에서 출격했다가 돌아오는 착륙장소였으나, 조금씩 제주도를 거점으로 출격하는 횟수가 많아진다. 1938년, 상하이 점령 후 오무라 해군항공부대는 다시 본거지를 중국 상해로 옮겼고 알뜨르는 오오무라 항공대의 연습비행장으로 활용된다. 알뜨르는 그 뒤 공사를 거듭하면서 1945년에 80만평에 이르는 규모가 되었는데, 여기에는 5살 꼬마부터 60세의 노인까지 노동에 동원된다. 물론, 노동자는 다름 아닌 제주도민이다. 노동환경은 잔인했다. 허리를 펼 틈이라도 만들었다가는 군화에 짓밟히는 것은 예사였고 심할 경우에는 개머리판에 맞아 뼈가 부서지는 경우도 허다했다고 한다. 중장비를 동원해 날라도 부족할 판에 인력으로 이루어지는 작업이기에 사고사는 끊이질 않았다. 뿐만 아니라, 이 건설에 쓰이기 위해 식량조달과 건설재는 제주도민들의 강제적인 공출에 의한 것이었다. 남녀노소할 것 없이 지옥 같은 시간이었다. 이때의 일본군은 태평양전쟁에서 이미 크게 패했으나 항복은 커녕, 결사를 외치고있던 실정이었다. 1945년 2월 9일, 연합군의 공격으로부터 일본 본토를 방어하기위해 최남단인 제주도에서는 암호명 ‘결7호작전’이 진행된다. 결호작전은 호에 따라 각각 다른 방면을 지시하는데, 1호부터 7호까지 각각 훗카이도, 지시마 방면. 토호쿠 방면. 간토 방면. 토카이 방면. 주부 방면. 규슈방면. 제주도 조선방면으로 구분된다. 결호작전은 대체로 일본 본토를 중심으로 지정되었으나, 조선에서는 유일하게 제주도가 지정되었다. 그 만큼이나 일본군에게 있어 제주도는 요충지였다. 일본은 도민들에게 무수히 많은 피해를 입히고, 결국 참패하고 만다. 일본의 항복이 선언된 후, 제주도는 미군에 의해 해상이 봉쇄되었고, 일본군이 사용했던 무기들은 파괴되었고 수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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