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론 - 이상의 생애와 활동, 문학적 특성, 주요작품 꽃나무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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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이상론 - 이상의 생애와 활동, 문학적 특성, 주요작품 꽃나무 해석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李 箱 論 --
李 箱 論
- 목 차 -
1. 이상의 생애와 활동
2. 문학적 특성
1) 불안과 자의식
2) 가족에 대한 부정의식
3) 근대성에 대한 부정
4) 새로운 시 형태의 실험
(1) 붙여쓰기의 시도
(2) 숫자와 수식의 도입
(3) 도형의 도입
(4) 호수가 다른 활자의 배열
(5) 행과 연의 구분의 없앤 점
(6) 그 이외의 특징
3. 주요작품 해석 : 꽃나무
4. 문학사적 의의
참고문헌
1. 이상의 생애와 활동
이상(李箱)의 본명은 김해경(金海卿)으로 1910년 8월 20일 아버지 김연창과 어머니 박세창 사이에 장남으로 서울에서 태어났다. 해경의 아버지 김연창은 얼굴이 얽은 곰보로 특별한 재주 없는 무능한 인물이었다. 그는 형인 김연필의 도움으로 궁내부 활판 인쇄소에서 일을 하다가 종이 자르는 기계에 손가락이 3개 잘린 후 이발업을 하며 생계를 꾸려나가게 된다. 김윤식.「이상연구」,(서울, 문학사상사,1987) p.49.
해경은 3살 때 백부 김연필의 집에 양자로 가서 백부가 사망할 때까지 살게 된다. 이는 해경 부모의 경제적 궁핍과 백부의 해경에 대한 편애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해경은 백부의 큰아들 겸 김씨 가문의 종손이라는 막중한 기대와 억압 속에서 유년을 보내게 된다. 문벌과 가계의 중요성을 내세우는 조부와 백부의 유교 윤리에 해경은 갇혀지고 만 것이다. 그리고 권위적인 큰아버지와 무능력한 친부모 사이에서 심리적 갈등이 심했으며 이런 체험이 그의 문학에 나타나 불안의식의 뿌리를 이루게 된다. 즉, 백부가 이상을 사랑했지만 이상에게는 부모가 아닌 다른 사람의 집에서 살고 있다는 본능적인 두려움과 경계심이 그로 하여금 소심하고 조용한 성품을 갖게 되는 결과를 낳은 것이었다.
이렇듯 해경의 성장 환경이 그에게 긍정적으로만 작용하지는 않는데, 이는 어린 시절 실부와의 생이별이 분리경험의 정신외상으로 남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환경적 요소로 인해 그는 한 평생 부모에 대해서, 그리고 실부와 양부의 관계에 대해 극단적인 이중적 감정을 가지게 된다. 또한 백부가 그에 대해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은 것에 반해 백모는 해경에게 냉담하였다는 점 김윤식, 오빠 이상,『이상문학전집-연구논문모음』(서울 : 문학사상사, 1995) 416쪽 참조.
을 미루어 보아, 자신에게 우호적인 환경과 적대적인 환경을 동시에 겪음으로 이중적 성향이 심화되었다고도 추측 가능하다.
이상은 1917년 신명학교(新明學校) 입학하였고, 1921년 3월에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보성고보(普成高普) 동광학교(東光學校)가 1924년 보성고보(普成高普)로 통합되었다.
에 입학하였다. 이때 동광학교가 보성학교에 병합되므로 다시 보성학교 4년에 편입했다. 그 학창시절 이상은 미술에 소질이 있었는데 교내 미술 전람회에서 유화 ‘풍경’이 당선되기도 하였다. 이때 교내 여러 그림 활동을 하다가 서서히 그가 언어에 눈을 뜨기 시작하였다. 그가 시를 쓰게 됨은 보성 시절에 만난 이헌구, 임화, 김기림의 영향도 적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보성고보 졸업 후 백부의 권유로 미술의 꿈을 접고 경성고공(京城高工)(지금의 서울대 공대) 건축과에 진학하였다. 1929년 졸업 후 총독부 내무국 건축과 기수로 근무하였다가 다시 총독부 관방회계과 영선계로 전근을 갔다.
그리고 1931년부터 「이상한 가역반응」을 시작으로 「파편의 경치」,「오감도」등의 시를 발표하였으며, 이 무렵 곱추 화가 구본웅과 친분을 쌓는다. 1932년「지도의 암실」을 발표하고,「건축무한육면각체」를 처음 이상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여 이상이라는 이름은 그가 일하던 건축 공사장에서 인부들이 ‘긴상’을 ‘이상’으로 잘못 부른데서 이상이라 자칭했다고 한다.
발표하였으며 이 해에 백부가 사망하였다. 또한 이 시기쯤 제1차 각혈을 한 듯 보인다.
이상은 1933년 각혈로 인한 건강의 악화로 건축기사 일을 그만두게 된다. 백부의 유산을 정리하여 가족과 함께 살게 되었으며 구본웅과 함께 요양 차 백천 온천에 갔다가 기생 금홍과 사랑에 빠져 함께 서울로 올라와 다방 ‘제비’를 운영한다. 이 무렵은 구본웅의 소개로 박태원과 친분을 쌓게 되고, 박태원의 소개로 구인회 사람들(정인택, 윤태영, 김기림, 정지용 등)과의 만남에 의해서 카톨릭 청년지에 꽃나무, 이런 시, 거울, 아침, 가정, 행로 등을 발표했다. 황가연:「이상소설연구」,(고려대, 석사논문. 1975) p.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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