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서신과 계시록의 해석의 원리와 실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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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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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바울서신과 계시록의 해석의 원리와 실제
들어가면서
성경해석을 바로 하기 위해서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어야 한다. 성경은 인간을 저자들로 삼고 기록되었지만 하나님께서 그 저자들을 성령으로 영감시켜 그 인간 저자들의 기록이 하나님의 자신의 말이 되게 한 것이므로 성경해석자의 바른 성경해석은 성경의 신적 기원을 인정하고 믿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그런데 성경의 신적기원을 믿는 것은 인간 자신의 의지적 결단으로는 불가능하므로 여기에는 성령의 역사가 필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의 해석원리는 성경본문 없이는 해석원리는 있을 수 없고 성경본문을 떠난 원리는 오히려 성경을 왜곡할 수밖에 없다. 박형용,『성경해석의 원리』(서울 : 엠마오,1991),81-86
3. 바울 서신은 이렇게 해석하라
바울서신(히브리서를 제외한 13서신)의 저자는 바울이지만 오늘날 해석학자들의 견해에 따라 저자인 바울을 여러 사람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즉 바울을 두고 어떤 학자는 남성 우월론자로 보고 어떤 학자는 여성 해방론자로 보는 데, 전자는 “여자는 일절 순종함으로 종용히 배우라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노니 오직 종용할지니라” 말씀(딤전 2:11-12)을 전거로 내세우며, 후자는 흔히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는(갈 3:28) 말을 호소한다. 이들은 바울이 한 말을 인용하면서 해석을 하는데 이들의 해석이 바른 해석이라고 주장될 수는 없을 것이다.
바울서신의 해석에서 첫 번째로 고려할 사항은 이것이 “서신”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이 서신들은 바울이 자신의 전도여행 때에 세운 교회들에게 보낸 편지들로 교회들에게 편지를 보낸 교회서신인 롬, 고전후, 갈, 엡, 빌, 골, 살전후 9개와 바울 자신이 양육한 목회자들(디모데, 디도, 빌레몬)에게 보낸 목회서신 4개로서 딤전후, 딛, 몬 이있다. 대개 서신이라고 할 때 그 외형상 당시의 서신들과 유사하다는 점을 관찰해서 연구할 필요가 있으며, 더 중요한 것은 구체적인 ‘삶’의 문제들은 대화 형식으로 다룬 다는 점이다. 또한 서신은 삶의 현장과 동떨어진 상아탑 속에서 추리해낸 철학적인 사상을 학위 논문 형식으로 쓴 것은 더더욱 아니다. 바로 개인과 교회와 사회의 삶, 땅에 뿌리박은 삶의 문제들을 나와 너의 관계 속에서 친근하고도 인격적으로 풀어가고 있는 것이 서신이라 할 수 있다.
바울서신의 해석에서 두 번째로 고려할 사항은 서신의 배경이다. 바울이 기록한 서신의 사회적 배경은 헬라파 유대주의와 랍비적 정통 유대주의의 배경이 깔려있지만 그것보다도 예수 그리스도의 시각으로 분석되어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이 서신은 바울에게 있어 다메석 도상에서 예수를 만나 복음으로 그의 삶이 변혁되었다는 핵심적 사실에 큰 의의를 두어야 할 것이다. 그가 예수를 만나기 전의 삶과 예수를 만난 후의 삶은 그야말로 정반대의 삶이었으며 완전한 변혁이었다. 그토록 핍박하던 예수가 바로 구주라는, 태양보다 밝은 계시 앞에서 무릎을 꿇고 참회한 자가 바로 바울이었기 때문이다. 바로 이 사건은 그의 세계관이 확연하게 바뀐 사건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예수’에 대해 이를 갈던 그가 예수의 포로가 되어 인격과 삶이 뿌리째 변혁되었으며, 그것도 부족하여 자신의 삶을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전적으로 헌신하는 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것을 감안할 때, 당시의 헬라적 유대주의의 배경, 랍비적 정통 유대주의의 배경을 연구하여 바울이 사회적인 어떤 배경에서 서신을 썼는지를 살피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이 모든 삶의 배경이 그 자체로서의 기준이 되어 바울 서신을 판단해서는 안될 것이다.
바울서신의 해석에서 세 번째로 고려할 사항은 바울을 단편적으로 이해하지 않고 총체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때가 차매’ 하나님께서 자기아들을 보내셔서 율법을 성취하게 하시고, 그의 믿음으로 연결된 자마다 속량하사 아들의 명분을 허락하시는 것이(갈 4:4-5) 바울이 전한 복음의 요체이다. 그러므로 바울서신 전체에 나타난 복음의 요체를 이해하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예를 들면 바울이 전한 복음의 내용 전체를 하나의 웅장한 건물에 비긴다면 이 건물의 정문은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만났다는 사실과 연관시켜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때가 차매’ 오신 그리스도가 율법을 성취하고, 죄 문제를 해결하고, 하나님의 의를 도래케 하고, 새 생명을 주시고, 새 생명의 공동체를 창출하시고, 또한 새 생명의 공동체는 어떠해야 하며 그 구성원 각자는 어떻게 살아야 하며, 또한 이렇게 성취된 구원이 완성의 날을 바라보며, 이미 성취되었으나 아직 완성되지 않은 즉 ‘이미’와 ‘아직’의 긴장 속에서 신자들이 어떻게 인내하며 살아갈 것인가를 바울서신 전체에 각각의 삶의 정황에 맞게 제시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때가 차매’(종말론)의 정문으로 바울이 전한 복음이 웅장한 건물 속으로 들어가서 그 글의 내용을 만끽하고 그것을 삶의 현장에 옮겨 오늘의 병든 삶을 치유하는 것이 바울이 전한 복음의 요체라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바울서신을 해석함에 있어서는 복음에 의해 장악되고 복음의 파노라마 속에서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살피면서, 기록당시의 역사적, 문화적 맥락과 관련된 본문의 전후 문맥을 관찰함으로써 바울서신을 풀어가야 할 것이다.
4. 계시록은 이렇게 해석하라
계시록 해석에서 계시록 20장의 ‘천년의 왕국’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계시록 전체를 어떻게 읽을 것이냐 하는 것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그러므로 계시록 20장의 ‘천년왕국’ 해석이 계시록 전체의 구조이해에 중요한 것이라면, ‘천년왕국’에 관한 어떤 해석들이 있는가? 하는 의문점이 있다.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은 계시록 20장의 천년왕국을 문자적으로 이해하지만 20장 해석이 4-22장을 휴거, 대환란, 지상재림, 천년왕국, 영원상태로 해석하는 세대주의적 해석에 중요한 영향을 끼진 것은 사실이다. 이런 이유로 볼 때 역사적 전천년설과 세대주의적 전천년설, 후천년설, 그리고 무천년설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역사적 전천년설은 천년왕국을 문자적으로 이해하고 주님이 지상의 천년왕국 전에 재림한다는 점에서 세대주의와 비슷하다. 전천년설은 천년왕국이 먼저오고 재림이 그 뒤에 온다는 것으로 오해되기 쉬우나 ‘천년이전재림설’로 기억하면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천년이전재림설은 교회시대 다음에 대환란이 있고 그 다음에 천년왕국이 온다고 믿고, 천년왕국 직전에 예수님이 재림한다는 학설이며, 후천년설은 ‘천년이후재림설’로 교회시대 말기에 백은(silver age)시대가 오고 그 다음에 잠시 대환란이 있은 후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마지막 심판을 하시고 새 하늘과 땅을 이루신다는 것이다. 무천년설은 천년왕국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시대인 지금 그리스도께서 그의 성도들과 함께 하늘에서 다스리고 계시며 땅에서도 성도들이 영적으로 그 다스림에 동참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에 지금이 천년왕국시대라는 것이다. 이 시대 말기에 잠시 대환란이 있고 그 후에 예수님이 재림하시고 바로 하늘과 새 땅이 온다고 본다. 어느 입장이 옳은 가에는 의문이 있을 수 있다.
전천년설의 근거는 요한계시록 20:1-6에서 알 수 있다. 계 19:17-21에 적그리스도와 그 무리들을 무찌르시는 것이 기록되어 있어, 세 원수(적그리스도, 사단, 사망)를 완전히 소멸하신 후 영원 상태로 새 하늘과 새 땅이 온다는 것이 21장 이후에 기록 되어 있다. 후천년설의 근거로는 계시록 20장보다는 ‘온 땅의 왕’ 이신 그리스도의 구원역사의 능력과 복음의 능력, 또 이에 따른 세상의 영적 진보가 제시되어 있다. 그리스도의 초림 이전에는 이교적 암흑이 지배했으나, 그리스도께서 초림하신 이후 기독교가 세상에 침투하여 사회가 좋아져가고 있다는 것이다. 무천년설은 계시록의 구조가 ‘점진적 병행주의’로 나타나 있다는 데 근거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초림부터 재림까지를 묘사하되 최종사건부분이 점점 더 밝혀지는 방향으로 전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총신대의 권성수는 무천년설의 입장을 취하고 있는데, 계시록의 구조가 ‘점진적 병행주의’ 라는 것과 셩경계시 전체의 구조가 ‘이미’와 ‘아직’의 구조라는 것이 가장 설득력이 있다. 예를 들면 6:16-17의 최종심판이 묘사되고 있는 것과. 12장의 1,260일(42개월,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 3년 6개월)이 초림부터 재림까지를 상징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같은 근거로 계시록 해석에서 천년왕국설과 관련하여 계시록의 내용이 ‘언제’ 성취될 것인가 하는 것이 해석의 원인이 된다.
- 로마시대의 입장은 계시록 1-20장의 1세기 로마시대의 기독교인들을 위해서 당시 성취되었고 후세대 기독교인들에게 단지 교훈적 가치가 있으며, 21-22장은 미래의 완성된 천국을 가리킨다고 보는 과거주의 해석법이고,
- 교회의 입장은 1-18장을 교회역사의 진행에 맞추어 해석하고 19-22장은 최종사건들로 보는 역사주의 해석법이다. 재림전후의 입장은 1-3장은 교회역사의 진행에 대개 맞추고 4-22장은 휴거, 대환란, 지상재림, 천년왕국, 영원상태로 보는 미래주의 해석법이고,
- 상징적 성취주의 입장은 계시록의 내용이 모든 시대 모든 신자들에게 적용되는 것으로서, 그리스도의 왕국과 사단의 왕국의 싸움과 그리스도의 왕국의 최종승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보는 상징주의 해석법이다.
그렇다면 계시록의 해석에서는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가? 당시 핍박당하던 신자들에게 그리스도의 왕국의 최종승리를 보여주심으로 위로와 격려를 주었을 것이 분명하므로 다니엘처럼 역사 속에서 사건들로 초점이 맞추어지는 것을 살피되 지나친 호기심으로 계시록을 수수께끼 풀듯이 풀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의미파악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또한 계시록은 구약과 당시의 상징들로 가득찬 책이므로 상징법연구도 곁들여야 할 것이다. 이렇게 계시록을 연구하면서 완성될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오늘하루를 순교적으로 정신으로 살아갈 때,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하는 요한의 기도가 진정으로 우리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기도가 될 것이다. 이것이 계시록을 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진정한 뜻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