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감상문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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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감상문 리포트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 지은이 소개
미치 앨봄 Mistch Albom
에미상을 수상한 바 있는 방송가이자 칼럼니스트, 베스트셀러 작가. 지에 글을 기고하고 있으며, APSE가 뽑은 스포츠 칼럼니스트 1위에 10차례나 뽑혔다. 전직 직업 연주가였던 그는 디트로이트 WJR 방송국에서 매일 라이오 쇼 진행과 ESPN의 ‘더 스포츠 리포터스’에 정기적으로 출현하고 있다.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였던 와 외에 4권의 칼럼 집을 출간한 바 있으며, 현재 미시간에서 아내 제닌과 함께 살면서 모리가 들려준 강의로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다.
모리슈워츠 Morrie Schwartz
루게릭 병에 걸리기 전까지 브랜다이스 대학에서 평생 학생들을 가르친 노교수. 공황기 착취 공장을 보고 다른 사람을 착취하는 일은 절대 하지 않겠다고 맹세하고 가르침의 길을 택한다. 그 후 시카고 대학교에서 사회학 석사, 박사 학위를 받고, 1959년부터 브랜다이스 대학에서 사회학 강의를 시작해, 1994년 병으로 더 이상 강의할 수 없을 때까지 가르쳤다. 병든 후 쓴 아포리즘을 계기로 ABC TV의 ‘나이트라인’에 출연하면서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되었고, 또 그것으로 20년 전 제자 미치와 재회하게 되면서 이 책이 시작된다. 현재 그는 웨스턴 뉴턴 근교의 언덕 위 나무 밑,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편안히 잠들어 있다.
* 줄거리
-모리의 이야기
모리는 60대에 천식이 심해지고, 몇 년 후 걷기가 힘들어져서 계단에서 쓰러지기도 하였다. 정밀진단 이후 1994년 8월 루게릭 병(근 위축성 측색 경화증)에 걸렸음을 알게 된다. 모리는 이날 춤추는 것을 그만 두었다. 모리는 춤을 굉장히 좋아했고, 어떤 음악이든 상관은 없었으며, 혼자 추었다. 모리는 매주 수요일 교회에서 열리는 무료댄스파티에 갔다. 그 파티는 대부분 젊은이들뿐이었고 열정적인 춤을 추는 그가 교수라는 것을 아무도 알지 못했다. ABC TV 영화로 방영되기도 했던‘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은 행크 아자리아가 미치역을 맡고, 비록 병으로 몸은 굳어 버렸지만 마음속에서만은 자유롭게 춤을 추고 있는 모리의 모습을 잘 표현한 잭 레먼이 두 주인공을 맡았으며, 48%라는 경이로운 시청률을 기록하였다고 한다. 또, 두 주연배우는 2000년 에미상에서 각각 최우수남우주연조연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병을 숨기지 않고 학생들에게 병에 대해 말하고 수업을 계속했다. 그는 2년 정도 남았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죽음을 삶의 중심이 될 마지막 프로젝트로 삼고 싶어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지팡이가 보행기로 대체되었고 화장실을 가는 것도 볼일을 보는 것도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고, 그는 아무렇지도 않아했다. 그는 ‘죽어간다’는 말이 ‘쓸모없다’는 말과 동의어가 아님을 증명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함께 학생들을 가르치던 동료가 심장마비로 죽음을 맞이하자 장례식에 참여했던 그는 사랑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하고 싶은 말을 다하기 위해 시간을 쪼갰다. 그리고 살아있는 장례식을 치르기로 계획한다. “이런 부잘없는 일이 어디 있담, 거기 모인 사람들 모두 멋진 말을 해주는데, 정작 주인공인 어브는 아무 말도 듣지 못하니 말이야.”
살아있는 장례식은 대성공이었다. 그리고 그는 죽지 않았다.
-미치의 이야기
선생님과 헤어진 후 나는 계속 연락하지 않았다. 1979년 졸업식이 있었다. 미치는 부모님께 모리선생님을 인사드리고 그에게 그를 선생님의 이름을 새긴 가방을 선물했다. 마지막 포용을 한 뒤(모리는 눈물을 흘렸다.) 연락하겠다는 약속을 하였다.
대학 사람들 거의와 연락이 끊겼다. 20대 초반 생활은 아주 힘들었다. 인생에서 실패를 맛보고 있었고, 죽음을 생각했다. 이 무렵 심각하게 죽음을 목격했는데, 그것은 좋아하고 본받고 싶어 했던 외삼촌의 죽음이었다. 미치에게 외삼촌은 음악을 느끼게 해주었고, 나중에 닮고 싶었던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44살의 나이에 췌장암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미치는 그의 고통스러운 마지막까지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자신의 무력함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