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피츠제럴드 잭 케네디 John Fitzgerald Jack Kenne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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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존 피츠제럴드 "잭" 케네디(John Fitzgerald "Jack" Kennedy)
존 F.케네디는 미국의 제 35대 대통령이자, 미국 대통령 중에서 유일한 로마 가톨릭 교회 신자라는 점과 상류사회에서 잉글랜드계에 밀리던 아일랜드계 혈통 때문에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의 반발과 논쟁을 불러온 인물이다. 그는 1961년부터 1963년에 암살당하기까지 겨우 2년 동안 대통령직에 있었지만 미국의 자유주의에 대한 상징으로 기억되고 있다. 케네디는 1946년부터 1960년까지 미 의회에 있었으며, 1960년에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케네디가 대통령직에 있던 시간은 짧았지만, 그의 임기 동안에 피그스 만 침공, 쿠바 미사일 위기, 베를린 장벽, 우주 경쟁, 베트남 전쟁 간접 개입, 미국 민권 운동 등 많은 일이 일어났었다. 서투른 명문가 도련님이라는 우려도 받았으나 역사가들은 케네디를 링컨, 루즈벨트, 워싱턴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 중 하나로 여기고 있다.
케네디의 사망
- 1963년 11월 22일 케네디 대통령은 텍사스 주 댈러스에서 유세 도중 총격을 받고 사망한다. 유세 도중 세발의 총성이 울려 퍼졌을 때, 케네디 대통령과 영부인 재클린 여사는 댈러스 시가지에서 카퍼레이드 중이었다. 텍사스 주지사 존 B.코널리와 그의 부인이 한 차에 타고 있었다. 길을 내려다보고 있는 텍사스 교과서 창고에서 발사된 것으로 보이는 총알은 첫 발은 대통령의 등, 두 번째는 머리에 박혔으며, 코널리 주지사 역시 부상당했다. 재클린 여사는 미친 듯이 남편의 머리를 무릎에 감싸안고 있는 동안 자동차는 5Km떨어진 파클랜드 메모리얼 병원으로 질주했고, 관중은 비명을 지르며 흩어졌다. 케네디 대통령은 오후 1시에 사망 판정을 받았다. 미국은 전례가 없는 추모 열기에 사로잡혔다. 케네디 대통령의 장례식은 11월 25일, 워싱턴 근교 앨링턴 국립 묘지에서 절차에 따라 엄수되었다. 그 사이 댈러스 경찰은 리 하비 오스월드를 용의자로 체포하였으나, 그 역시 잭 루비의 총을 맞고 사망한다.
케네디 사망의 음모론 등장
- 존 F.케네디의 암살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많은 증거가 묵살되었다. 진상조사기관인 워렌 의원회는 대통령이 단독범 리 하비 오스왈드에 의해 살해되었다는 기존의 주장을 공식적으로 확인해주었다. 그러나 미국인의 대다수는 아직도 케네디 대통령을 음모의 희생자로 기억한다. 미국 하원의 암살소위원회의 보고서에는 이러한 내용이 존재한다. “본 위원회는 여러가지 입수 가능한 증거를 토대로 하여 조사한 결과 존 F.케spel 대통령이 음모에 의해 암살되었다고 믿고 있다.”
음모론 근거 1 - 전(前) 미 연방수사국(FBI) 소속 금속 전문연구원 윌리엄 토빈을 비롯한 탄환 전문가들은 존 F 케네디 전(前) 대통령이 리 하비 오스왈드가 쏜 2발의 총탄을 맞고 암살됐다는 미 정부의 결론을 반박, 당시 현장에서 발견된 총탄 파편 성분을 화학적·통계적으로 새롭게 분석한 결과 2발 이상의 총탄이 대통령을 관통한 것으로 보인다며 제2의 암살범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이어 탄환 전문가들은 이제껏 잘못된 증거에 근거해 케네디 전 대통령 암살이 단독범행에 의한 것이라 정당화해 왔다며 미 정부는 지난 1963년 대통령이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암살됐을 당시 몇 발의 총알을 맞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총알 파편들을 재수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워렌위원회로 알려진 케네디 암살 진상조사위원회는 지난 1964년 오스왈드의 총기에서는 3발의 탄환이 발사됐으며 이 가운데 1발은 빗나가고 2발만이 대통령을 관통한 것으로 결론지었다. 하지만 이 같은 결론에 의혹이 계속해서 제기되자 미 의회 하원은 오스왈드 이외에도 제2의 암살범이 존재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으면서도 제2의 암살범이 쏜 총탄은 케네디 대통령을 맞추는 데 실패했다는 결론을 발표했다.
하원의 근거는 총탄 파편을 분석한 결과 파편들의 성분이 2개 이상의 총탄에서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유사했다는 것. 하지만 토빈을 비롯한 탄환 전문가들은 오스왈드의 총에서 나온 다른 탄환들도 모두 유사한 성분으로 이뤄졌으며, 더 나아가 탄환 30개의 성분을 분석한 결과 암살 현장에서 발견된 파편 가운데 1개와 정확히 일치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이어 "이는 암살에 사용된 탄환이 3개 혹은 4개였음을 의미한다"며 "만약 암살에 사용된 총탄 파편들이 3개 혹은 4개에서 나온 것이라면, 제2의 암살범이 존재한다는 의미"라고 주장했다.
음모론 근거 2 - 암살자 리 하비 오스월드의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