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눈에 비친 한국인의 국민성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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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나의 눈에 비친 한국인의 국민성
국민성이라는 거창한 수식어로 이 보고서의 제목을 정했지만 전문적이고 체계적으로 한국인의 국민성에 대해 말할 자신이 없다. 난 아직 대학에 갓 들어온 새내기에 불구하고 한국이라는 나라에 태어난 지 아직 20년 밖에 없고 아무래도 내가 한국 사람이라 그런지 한국인의 인성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정확하게 분석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래서 기왕 내가 한국 사람이라는 것을 감안해서 내가 이 땅에 살면서 보고 듣고 느꼈던 과정을 통해 한국인의 국민성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 그런 이유로 제목이 나의 눈에 비친 한국인의 국민성이다.
한국인의 국민성이 무엇인가에 대해 말하기 전, “나”라는 존재는 어떤 인성을 가지고 있는지 말하고 싶다. 내가 어떤 생각을 갖고 살아왔는지 나 가족사, 가족원들의 특징이나 가족원들과 나와의 관계를 서술 할 것이다. 이렇게 국민성을 논하기 전에 내가 자라온 환경을 말하는 것은 이것은 무척 주관적인 서술 방식이기 때문에 서술자가 어떤 인성을 가지고 있는지에 따라서 한국인의 국민성이 달라질 것이다. 그리고 나 또한 한국사람이기 때문에 나를 안다는 것은 더 나아가 한국인의 인성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지 않을 까 해서다. 먼저 우리 “가족”에 대해서 말하고 싶다. 우리 집안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나, 동생 , 이렇게 5명이다. 할머니가 계시기 때문에 설거지나 청소 같은 것들을 도맡아 하신다. 연세가 꽤 되시기 때문에 귀가 잘 안 들리셔서 할머니와 대화를 그다지 하는 편이 아니고 아무래도 시골에서 오랫동안 사셨던 분이라 그런지 이야기가 잘 통하지 않는다. 할머니는 나를 어렸을 때부터 키우셨다. 어머니를 대신하여 나의 육아를 담당하신 분이시다. 그래서인지 할머니와 나는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함께 잤다. 할머니의 성격은 소극적이시고 앞에서 나서는 활발한 성격이 아니시다. 겁이 많으시지만 한번 결심한 생각은 절대로 바꾸시지 않을 정도로 고집이 강하시다. 이러한 성품 갖고 계시는 할머니는 매우 엄격한 집안에서 자랐다고 한다. 대략 24살에 청산과부가 되시고 박씨 가문의 맏며느리로 집안 일을 담당 하셨기 때문에 그런지 자존심이 매우 강하시고 자신의 과거에 대해서 할아버지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꺼려하신다. 이러한 할머니 밑에서 자란 아버지는 할머니와 사이가 안 좋으시다. 또 아빠는 광주에서 고등학교, 대학교를 다니셨기 때문에 (할머니와 아빠의 고향은 해남이다) 할머니와의 교류가 별로 없었다. 아빠의 직업은 철학과 교수이고 대학시절 학생운동을 하시다가 잡혀가 고문도 당하셨다는 이야기를 내가 어렸을 때부터 듣고 자랐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아버지의 성격과 나의 성격은 아빠와 나와의 사이가 어떻냐에 따라서 크게 달라졌다. 내가 매우 어렸을 때 (초등학교 시절) 아빠와 나는 가끔씩 대화를 하지 않을 정도로 사이가 안 좋았다. 아빠의 교육방식이 매우 엄격해서 신체적 처벌이 심했다. 내가 중학교 2학년이나 고1때는 한창 사춘기라서 아버지에 대한 강한 반발심이 생겼다. 아빠는 나사이의 관계를 좁히려고 많이 노력하셨지만 그때마다 말을 아예 하지 않았거나 도망갔던 것 같다. 내가 고2가 될 무렵 그때부터 서서히 서로를 이해하고 각자의 단점을 고쳐 나갔다. 아빠는 딱딱하고 융통성이 없고 매우 엄격하셨던 교육방식을 바꾸시고 감정 표현도 적극적으로 하셨다. 또 성격이 조금 급하셔서 야단을 치실 때면 소리를 지르셨는데 이제 그런 성격도 바꾸셔서 대화도 오고가고 (주로 사회적인 이슈나 토론에 대해 이야기 한다) 집에 돌아오시면 포옹도 많이 해주신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빠는 나의 인성변화에 많은 영향을 끼치신 것 같다.
그 다음으로 엄마는 현재 구례중학교 윤리교사이시다. 윤리 선생님이라 그런지 헤어스타일이나 옷 입는 것 등 외향적으로나 내적으로 규제가 심하였다. 또한 엄마는 자신의 생활 공간이 분명한 분으로써 여자 대 여자로 볼 때 무척 멋진 분이시지만 딸로써 엄마를 볼 때 칭찬과 야단이 불규칙하고 너무 감정에 치우치셔서 내가 잘못을 했을 때 좋게 설득하시기보단 짜증부터 먼저 내시는 구석이 있다. 엄마와 나는 대화는 많이 오고 가지만 신체적 접촉은 별로 없다. ( 내가 살면서 엄마와의 포옹은 2번에서 3번 정도 인 것 같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사람은 동생인데 매우 사이가 안 좋아서 어렸을 적에는 거의 5분마다 한번씩 싸웠다. 어린 나이에 동생이 생기게 되어 아버지가 나를 더 이상 사랑하시지 않는 다고 생각, 동생을 많이 못살게 굴었고 나와 동생은 무려 5살 차이나 난다. 동생은 대체로 자기 중심적이고 말을 함부로 하고 예의가 없는 것 같다. (나에게만 유독 그런 행동을 하는 건지도 모른다) 나와 성격이 정반대라서 지금도 가끔씩 싸우고 있다. 이러한 집안 환경에 살아온 나는 다른 애들에 비해서 사춘기가 심했다. 그때는 부모님과 이야기하는 것을 거부하고 학교 생활도 적응을 쉽게 못했다. 혼자 있는 것이 즐거웠고 책을 읽고 상상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학교라는 집단 생활이 싫었다. 그래서 고1때까지 3번 정도 자퇴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했었다. 이런 생각을 갖다가 고2때가 되면서 본격적으로 공부를 하기 시작했고 고3 때가 되면서 그때까지만 해도 서먹서먹하던 부모님과 나와의 사이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지금은 대학에 와서 성격이 밝아지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어렵지 않게 되었다. 짧게 나마 내가 살아온 내력과 나의 인성형성에 영향을 준 가정 환경을 설명하였다. 이러한 나의 인성으로 본 한국인의 국민성은 다양성을 존중 해주지 못하고 획일적인 것 같다. 그 대표적인 예로 혼혈아에 대한 차별을 들 수 있다. 나는 우연히 혼혈아를 주제로 한 “추적 60분” 을 우연히 본적이 있는데 거기서 대부분 미군들에 의해 태어난 혼혈아가 한국인으로써 인정을 받지 못하고 사회적 차별로 고통받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한국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미국인도 아닌 그들은 갈곳을 잃고 방황하고 있었다. 단지 혼혈인 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사회에서 소외 받는 것이 너무 억울하다고 통곡하는 혼혈인 들은 대부분 미국이나 다른 나라로 이민 가는 것을 희망하고 있었다. 왜냐면 다른 나라는 우리나라처럼 혼혈아에 대한 차별이 심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이렇게 자신과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일까?
이러한 한국인의 국민성의 연유에 대해서 나는 우리나라의 교육에 그 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교육이외도 생물학적으로 따진다면 몇 천년동안 단일 민족을 유지하는 나라이고 그 많은 시간동안 임진왜란이나 일제의 식민 통치를 받아온 우리에게 "민족"이라는 것은 무척 중요했을 것이다. 또한 정치적으로 보았을 때 7080년도의 박정희 정권에 의한 반공주의는 우리 국민들에게 흑백 이데올로기를 만들었다. 하지만 내가 굳이 한국인의 획일성이 한국의 교육제도에 비롯된다고 한 것은 교육이라는 것이 여러 분야에 영향을 미치고 자라나는 아이들의 인성은 곧 미래의 한국인의 국민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 특히, 고등학생들은 학교에서 대부분의 일과를 보낸다. 나 또한 고등학교 생활을 경험해 봐서 알지만 고등학교 과정의 교육은 학생들이 원하는 지식을 가르치기보다는 오직 입시에 초점을 맞추어 일방적으로 외우기 식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각자의 개성을 인정하고 거기에 맞는 공부를 하기보다는 하나의 보편적인 기준을 세워 모든 아이들이 거기에 맞추어 가기를 바라는 것이다. 한국의 교육정책은 마치 동그라미, 세모, 육각형, 네모 등 여러 가지의 도형이 있는데 여러 도형의 개성을 존중해 주지 못하고 세모가 최고의 도형이라고 생각하고 동그라미든 네모든 간에 세모와 모양이 비슷해지기를 요구하며 동그라미를 세모처럼 가위질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이렇다 보니 교과서가 제시하는 답과 다른 시각으로 문제를 바라보는 학생은 즉시 오답으로 간주되고 그러한 가르침을 아무생각 없이 받아먹는 아이들은 공부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있어 수동적인 태도가 된다.
교육방식 자체가 획일적이다 보니 행동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있어 자연히 그와 비슷해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이러한 학교적 분위기에서 조금 특이한 행동을 하거나 자신과 비교해 보았을 때 조금만 힘이 없다고 생각이 되면 심각한 충돌이 생기거나 학교로부터 매장을 시킨다. 이러한 집단적 따돌림은 우리들은 그것을 왕따라고 부른다. 왕따로 인한 큰 사건으로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기도 했는데 지금은 신문을 보면 왕따에 대한 기사거리가 많이 줄어들긴 했지만 시간이 지났다고 해서 왕따의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지 않는 한, “왕따” 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물론 집단으로부터의 소외감은 어느 시대 건 어느 사회 건 간에 존재한다. 하지만 단지 남과 다르다고 해서 신체적인 폭행을 가하고 인격적인 모독을 주는 것은 어느 나라나 다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러한 폭행과 인격적인 모독은 많은 문제점을 낳는데 왕따를 당한 아이들은 심각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주고 더 나아가 자살을 할 가능성이 크다. 거기다 왕따를 주도하는 아이들은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서 죄책감이 전혀 없다. 자신이 한 행동이 한 친구의 미래를 짓밟았는데도 죄책감이 없다는 것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학교 내의 이러한 분위기가 사회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이러한 사례로 앞서 언급했던 혼혈아 문제도 그중 하나이다.
우리나라 교육제도가 낳은 또 다른 한국인의 국민성은 과정은 중요시 않고 결과만을 찾는 것이다. 과정이 어떻든 간에 남이 볼 때 결과만 좋으면 장땡이다 라는 식의 사고는 바로 입시 제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 대표적인 예로 2005학년도 수능시험 때 대략 200명이 넘는 고3수험생들이 집단 컨닝을 하거나 대리 시험을 하는 것으로 밝혀져 많은 사람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들이 왜 수백 만원의 비용을 투자하면서 까지 컨닝을 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고3일 때의 시절을 떠올려 보면 선생님들께서는 우리들의 인생의 목표가 오직 대학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학생들을 점수대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이렇다 보니 한국에 사는 고3 수험생들에게는 지긋지긋한 학교 생활에서 벗어 날수 있는 것은 대학이라는 것이라고 머릿속에서 각인되는 것이다. 대학을 가는 것이 사회적으로 출세하는 것의 지름길인 것처럼 받아들이는 성향 때문에 고3수험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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