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사회 연구 소수집단으로서의 재일제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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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제주사회연구
소수집단으로서의 재일제주인
제주인들은 일제 식민지시기 해방공간에서 가난·강제동원·4·3과 6·25의 혼란 등의 이유로 대거 일본으로 이주했다. 재일 제주인들은 이주 초기 분뇨수거·부도노동자·자갈 및 고철수집 등 최하위의 일일 노동자로서 일본인 육체노동자 평균임금 2.02엔의 76%에 불과한 1.54엔의 임금으로 생활하면서 돈을 모은 후 당시 일본의 3D업종인 야키니쿠(燒肉)·파친코·토목건축업 등으로 진출하면서 자본을 축적해갔다. 재일 제주인의 경제활동은 동경의 경우 음식업(27%)과 가방제조업(21%)·신발제조업(16%), 대판에서 신발제조업(20%)과 음식업(17%)·건설업(15%) 등이 주를 이룬다. 종업원 수는 10명 이하가 절반 이상을 차지하여 소수의 종업원을 고용하고 있는 영세 자영업자가 많고 이들 대부분이 일본 중소기업의 하청에 속하는 영세상공인이라 할 수 있다. 2000년대 초 재일 제주인들의 파친코 매출은 일본 전체 파친코 매출의 70%에 달하였다.
2001년 말 기준으로 일본의 외국인 등록통계를 보면 재일 한인 총수는 63만2,405명이며 이 중 재일 제주인은 10만7,666명으로 전체의 17.2%이다(고광명·진관훈). 이들은 오사카(대판), 도쿄(동경), 고배(신호), 나고야(명고옥), 교토(경도) 등 주로 도시권에 거주하고 있다. 이들은 일제의 민족적 차별대우 때문에 취업이나 임금에 있어서는 물론 모든 생활분야에서 불리한 입장에 설 수밖에 없었고, 일본 내 소수민족 집단으로서 하위의 사회계층을 형성하고 있었다고 짐작된다. 재일 제주인들은 일본에 비해 자영업층이 많고 노동자(피고용)층은 적다 자영업층이 많다는 것은 재일 제주인들이 피고용기회에 있어서 상당히 불리한 지위에 있기 때문에 초래되는 현상으로 볼 수 있다. 또 노동력 인구의 8.3%가 실업자로 존재한다는 사실은 재일 제주인들 가운데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부랑의 최하 사회층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러한 현상은 재일 제주인들의 소수집단적 성격의 일면이 반영된 현상이다. 소수집단은 계층 상승이동의 기회를 상대적으로 박탈당하는 면에서 카스트(caste)적 성격을 가졌음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소수집단의 계층구조는 지배집단의 계층구조 속에 차별적으로 존재해서 상승이동에 어떤 한계를 갖게 된다. 따라서 재일 제주교포의 계층구조는 전반적으로 보다 더 하향된 수준에 위치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소수집단의식과 관련하여 자녀문제에 대한 태도, 전시의 참전태도, 배우자 선택 등의 물음에 전문·기술직->실업자->기업인과 상인 등의 순으로 평균 지수를 넘어선다. 반대로 수공업자->사무·노동직은 상당히 낮은 소수집단의식을 보인다. 즉 실업자를 제외하면 대체로 계층구조상 높은 층일수록 소수집단의식이 높고 낮은 층일수록 낮다. 재일 제주인들은 소수민족집단으로서의 차별대우를 받고 있는 것이고, 이를 교포들은 느끼고 있는 것이다(신행철,1982).
소수집단으로서 재일 제주인들을 지탱해주는 것은 지연·혈연에 기초한 강력한 네트워크이다. 이 중 의례생활은 그들에게 삶의 의욕을 제공해 줄 뿐만 아니라 제주인의 아이덴티티를 확인하고, 이를 재 강화시키는 데 중요한 기능을 하고 있다. 제주인들의 의례생활의 주축은 조상제사 분야다. 한국에서는 많이 간소화되고 있지만 일본에서는 3년상, 4대봉사가 거의 남아있다. 기제사는 친가만이 아니라 외가·사돈까지 참여함으로써 엄숙한 분우기 보다는 자손들간 교류의 공간으로서 동류를 확인하고 유대를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이 지역의 조선절은 불교형식이기는 하나 대부분 무업을 겸하고 있다. 야쿠바라이(액땜)·방생 의식에서도 행위자 본인이나 자신의 가족만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더 넓은 범위의 친족관계를 유지·강화하는 계기로 삼는다(이문웅, 1988).
소수집단(minority)은 다른 인구 집단에 비해 수적으로 열세에 있거나 지배적이지 못한 자리에 있는 집단을 가리킨다. 여성·이민자·소수 인종·장애인 등 한 사회 안에는 다양한 소수집단이 존재한다. 이들은 주류사회의 기준에 따라 자유나 권리가 제한되거나, 동일한 상황에서 주류집단보다 못한 대우를 받는 경우가 많다. 소수집단에 대한 차별적 인식은 집단과 집단 사이에서는 사적·공적 영역에서 교류와 상호작용이 단절되는 형태로 나타난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땅히 누려야 하는 정치·경제·사회적 권리가 차별적으로 주어짐으로써 인권을 침해한다는 점이다. 일본사회에서 인종적 차이가 뚜렷하며 역사적·문화적으로 형성과정이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는 소수집단으로는 오키나와인, 아이누, 피처별 부라쿠민을 들 수 있다. 그리고 국적의 차이나 이질적 문화를 가진 외국인에 대한 배타적 경향 때문에 사회적으로 구분되고 있는 소수집단으로 재일 외국인이 있으며, 그 대표적인 집단으로 재일 한국·조선인이 있다. 이들 소수집단은 각각 다른 문제들을 안고 있는데, 일본 사회에서 사회적 약자로 살면서 차별의 구조화에 대한 저항을 표출하고 있다. 특히 오키나와는 17세기에 일본 본토로 편입된 이후 1945년 태평양전쟁 말기 일본 본토방어를 위한 희생물로서 마지막 지상결전장이었고, 일본 패전 이후에는 일본 본토가 평화주의와 경제적 번영을 구가하는데 반해 미군기지가 들어서 일본과 동아시아 방공블럭을 위한 전략적 위치로 전락하였다. 이 때문에 오키나와인들이 소수집단으로서 인권과 평화를 지향하며 자립을 추구하는 운동을 전개하고 있는데 제주도와 비교하여 시사점을 던져준다.
재일 제주인들에 대한 글들을 보면서 우선 정리해야 할 것이 그들을 지칭하는 용어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별 생각없이 사용하는 호칭이 사실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신행철의 글을 통해서는 소수집단으로서 재일 제주인의 위치를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소득구조 등에서 재일 제주인들과 일본 전체와의 비교 등이 이뤄지지 않음으로써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아쉬움이 있었다. 고광명·진관훈의 글에서는 성장하고 있는 재일 제주인 사회의 힘을 말하고 있으나 실제 그들이 말하듯이 ‘지금은 일본인기업과 경쟁할 정도로 성장을 거듭하고 있고 재일 제주상공인들은 재일 한인경제의 실권을 장악하며 지역경제 발전에 공헌했으며 제주도 경제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과 볼 수 있는지 의문스러웠다. 또 다수의 이주를 가져왔던 강제동원, 4·3과 6·25 시기의 이주 등에 대해서는 별도의 연구가 진행되어야 할 것이란 생각도 들었다. 아울러 재일 제주인들이 제주발전에 공헌한 부분, 망향의 정과 한에 대한 부분도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

신행철, 「재일 제주교포 : 그 소수집단으로서의 성격과 계층구조」, 『제주사회와 제주인』, 2004.
신행철, 「제주인의 정체성과 일본 속의 제주인의 삶」, 『제주사회와 제주인』, 2004.
이문웅, 「재일 제주인의 의례생활과 사회조직」, 『제주도연구』제5집, 1988.
고광명외, 「재일 제주인의 상공업활동에 관한 연구」